주총에 벚꽃 만발…제철 만난 총회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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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일은행을 선두로 시작된 5개 시은 주총은 올 들어 유난히도 벚꽃(?)들이 만발.
2∼3명의 이른바 유명 총회꾼이 발언권을 독점, 북치고 장구치는 가운데 예외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제일은행의 경우 의장을 맡은 은행장이 다음 안건을 상정하기도 전에 미리 내정되었던 주주들이 다투어 일어나 무수정 원안통과를 외쳐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
첫 번째 발언권을 얻은 배 모 주주는 30분간의「필리버스터」작전으로 김을 빼면서 은행장 예찬론으로 일관.
정 모 주주는 침이 마르게 은행장을 칭찬하다 『존경하는 김영기 행장님!』하며 성이 틀리자 은행장이『저의 이름은 하영기입니다』라고 정정해주는 촌극을 빚기도.
1시간 4O분만에 끝난 주총에 발언한 주주는 모두 5명.
이어서 하오4시에 열린 조흥은행 주총은 통장유인물로 대체해왔던 영업보고를「슬라이드」까지 동원해 이채를 띠었다.
그러나 어딜 가나 그 얼굴들인 총회꾼들이 은행집행부와 사전에 짠 각본대로 목청을 높여 단 50분만에 끝냈다.
한 이름난 주주는 각 행 주총마다 그 은행의 좋게 나타난 숫자만을 골라 인용하면서 칭찬하기에 바빴고 다른 어떤 주주는 반대의견이 나올 낌새가 있을 때마다 불같은 공격을 퍼부을 듯이 일어나 발언권을 뺏어 놓고서는 정작 『무수정 통과』를 외치기가 일수.
이 같은 장단에 맞춰 총회를 진행하는 은행장은 2∼3명의 박수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고맙다며 만장일치를 선포.
그나마「이슈」가 되었던 점은 자산재평가 차액을 자본금으로 전입시켜 무상주를 달라는 문제였는데 각 은행장이 공히 금년 안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
또한 늘 말썽을 빚어온 배당 못 받는 포철 주 문제가 제기되자 은행장들은 기왕의 일은 어쩔 수 없으니『앞으로는 안 사겠다』는 식의 은행마다 한결같은 질문에 한결같은 답변.
최근의 지방은행 주총이 진일보했다면 시중은행 주총은 오히려 퇴일보했다는 게 중론.
학자금 내 손으로
27일「앰배서더·호텔」회의실에서 열린(주)「모나미」주주총회에 꼬마주주들이 다수 참석,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 미양 초등학교 6학년 7반 졸업생인 이들 어린이들은 지난해 3윌부터 담임 주응현 선생의 지도아래 『중학교 입학금은 내 손으로 마련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아버지 구두 닦기, 폐품·영수증 모으기 등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지난 한해 동안 4백 95만 9백원을 저축, 입학금을 내고도 남는 1백10만원으로 지난해 12윌「모나미」를 비롯해 해태·한일은행 등의 주식 1천4백 주를 샀다는 것.
지난 2윌 초 주주총회참석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가슴이 설레었다고 말한 이들 꼬마주주들은 이날 경영진의 환대(?)를 받으며 총회장에 입장,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의젓하게 앉아 회의를 지켜봤다.
소 주주들이 담합
대 주주와 소액주주들이 배당률을 놓고 더 달라는 측과 못 주겠다는 측이 팽팽히 맞서 1시간이면 끝날 주총이 4시 반 동안 끌었다.
26일 하오 2시 세종「호텔」에서 열린 대한중석 주총은 대·소 주주 구분 없이 25%씩 배당하겠다는 경영진의 제의에 참석한 이 모씨 등 다수의 소 주주들이 담합,『대부분의 기업이 소 주주보호를 위해 차등배당을 실시하고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될 게 아니냐』며 소 주주에게는 배당을 더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
이에 대 주주 측은 25%배당도 다른데 비해 높은 편인데 무슨 차등 배당이냐며 맞서 이 문제로 4시간여 동안 콘 소리가 오가는 등 실랑이를 벌였다.
옥신각신하던 끝에 『그러면 사내 유보로 남겨 놓은 2억 원을 모두 배당으로 돌리자』는 의견이 나와 6시가 넘어서야 27% 배당을 의결.
성원여부로 설전
대한투자금융 주총은 대 주주인 해태「그룹」과 미원「그룹」간의 신경전 때문에 회의벽두부터 성원여부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였다.
해태 쪽에서 아직 사람들이 덜 왔으니 좀더 기다렸다하자는 제의에 미원 주주 측은 주총 시각도 됐고 주주참석자 수도 과반수를 넘었으니 회의를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양측이 옥신각신 끝에 미원 측의 주도로 주총이 시작되자 화가 난 해태 쪽 주주들이 퇴장, 미원 측 주주와 일부 소 주주들만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대한투자금융의 주식소유는 해태지분이 13.67%, 미원 측이 17.4%다.
결손은 덮어두자
영업실적이 나쁘거나 결손을 낸 회사일수록 주총이 오히려 일사천리로 끝나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26일 상오에 있은 D증권을 비롯해 이제까지 주총을 끝낸 결손 사들은 대부분이 아무런 충돌 없이 「스무드」하게 주총을 넘겨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할 경도.
이에 대해 한 투자자는 결손 사들이 미리 주주명단을 놓고 말썽을 일으킬만한 주주나 이른바 총회꾼들을 접촉, 선심공세 등 사전공작(?)으로 주총을 넘기기 때문이라고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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