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이지리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나이지리아」는 멀리 「아프리카」의 중서부에 위치한 나라지만 그 이름은 별로 생소하지 않다. 지난 60년대 후반의 「나이지리아」 내군은 일약 그 나라를 유명하게 만들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비극』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비아프리카의 참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나라의 인구는 공식 집계로는 7천9백만 명(79년판 유로파」연감). 면적은 한반도의 배도 넘는다. 국민 소득은 6백10「달러」.「나이지리아」의 공용어는 영어로 되어있으나 상업영어 이외는 「하우사」부족의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방언만 해도 1백여 개어. 부족 역시 동서남북으로 다르다. 얼굴 색도 진흑에서 갈색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
15세기 무렵「나이지리아」엔 노예시장이 섰었다. 「포르투갈」인들이 장을 보러왔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서부해안을「노예해안」으로 부르는 것도 이때부터다.
영국이 진출한 것은 19세기였다. 1963년 10월 독립. 그러나 6년만에 「쿠데타」가 일어나 무려 13년을 두고 군사평의회가 집권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민간정부로 바뀌고 군사평의회를 이끌어온 장성들은 퇴역하거나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다.
오늘은「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복삭정당에 의한 의회민주국이 되었다. 언론의 자유도 보강되어있다.
정치안정을 이룩할 수 있게 된 배경은 경제신장인 것 같다. 1956년에 발굴을 시작한 석유자원은 최근 일산 2백30만「배럴」의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석유매장량은 근착「유로파」연감에 따르면 2백억「배럴」. 향후 25년간의 가채량이다. 세계 제7위. 이 가운데 65%가 육지유전이며 나머지는 해저유전.
채굴비용이 중동유전에 비해 3배내지 7배에 달하는 것을 보면 그리 좋은 여건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유황 분이 적어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주로 이곳의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전 산유량의 3분의1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산유는 「셸BP」에서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 그 밖의 것이「걸프」「모빌」「아지프·필립」 등 석유회사들의 지분이다. 「메이저·그룹」의 영향 속에 묶여있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총 수출 가운데 석유가 차지하는 몫이 94%나 된다. 석유수출은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게끔 되었다.
미국 다음으로 영국·「네덜란드」·「프랑스」 등이 「나이지리아」 유전에 「파이프」를 대고 있다.
우리 나라는 요즘「나이지리아」와 국교를 열고 대사를 교환했다. 석유외교 다변화의 일환일 것이다.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몫이 얼마나 될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