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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의 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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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패권주의라는 말이 있다. 중공이 즐겨 쓰는 용어다. 미·중공사이의 이른바 「상해코뮈니케」 에도 이 말이 등장한다.
1975년1월 중공은 새 헌법을 만들면서도 이 용어를 조항속에 넣었다. 『초대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은 이 용어를 「지배주의」라는 말로 바꾸어 쓴다. 그들의 이른바「반지배주의」란「슬로건」은 친 중공노선의 한 면모를 반영한 것이다.
지난해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도 북한은 「반지배주의」의 입장에 섰었다. 지배주의국가는 「베트남」을 충동한 소련. 그 후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바로 그 소련에 대해서도 북한은「반지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요즘「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열린 사회주의국가 대표단 협의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격려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는데 평양대표는 『노!』라고 했다.
그 명분은 어떻든, 평양은 「아프가니스탄」사태이후 고독한(?) 소련을 더욱 고독하게 만든 셈이다.
사실 소련과 중공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북한은 어느 쪽에도 마음놓고 흰 이빨을 드러내고 미소를 짓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북한의 중요무기는 온통 소련제다. 그러나 이 무기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는 중공의 「파이프」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소련도 한때는 석유까지 대어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형편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포와 석유. 북한으로는 쉽사리 양자택일을 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따라서 소련과 중공의 양자택일도 불가능하다. 그런 북한이 왜 소련의 패권주의에 반기를 들었을까.
이 수수께끼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다소 풀릴 것도 같다. 근년 북한의 경제적 상황은 일본의 어느 학자가 한 표현을 빌면 『괴멸적인 국면』에 있다. 우선 일본에 대한 채무 (4억달러)도 갚을 염두를 못 내고 있다.
김일성은 전략상 그러는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글쎄 그 말을 믿을만한 객관적 상황은 아직 없다. 더구나 북한의 재외대사관들이 한대 밀매수입으로 운영되었던 사실은 오히려 「괴멸적현실」을 입증할 뿐이다.
필경 북한의 내심은 미·중공의 밀월을 틈타 미국 쪽에 등을 기대려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는 미국에 손을 내밀고 원조를 청하는 날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미국은 쉽사리 그런「피에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정세는 안일한 평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벌써 『제2의 냉전시대』 라는 말도 쓰여지고 있다. 변화와 불확실의 연속. 그것만이 오늘을 가늠하는 유일한 척도인 것이다.
우리의 외교는 지금 어디에 포석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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