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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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날 많은 한국시인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쓴 대부분의 시의 풍경들은 도시라기보다 전원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실사회를 도피하는 경향으로 발전하기 쉽다.
도시의 개념은 <이성적인 질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 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인 문명과 집단적인 책임의 의미를 그 속에 담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들이 비록 상상력으로써 시작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현실적으로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자 현장인 도시를 부정해서는 안되리라.
아무리 도시라는 환경이 어둡더라도 시인들은 현실을 비판하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눈을 주어야 할 것이다. 20세기의 「엘리어트」와 「조이스」 같은 서구의 시인작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도시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기계문명을 반대하고 인간회복을 위해서 생명의 바다인 무의식과 신화의 세계를 내용으로 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신비로운 결합을 강조했지만 「아폴로」적인 질서를 나타내는 도시적인 요소를 그들의 작품의 공간에서 버리지 않았다.
새삼 처절한 도시풍경이 담긴 여물고 단단한 한국시가 아쉽다.
정현종의 『바다의 사진』(문학사상)은 비록 도시의 풍경을 담고 있지는 않으나 해변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통해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뿌리와 결속문제를 의미깊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비록 간접적이지만, 기계문명과 신의 부재의식으로 인해 과거의 전통과 인간관계로부터 단절되어 뿌리뽑힌 도시의 대중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바닷가에 앉아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면, <마음의 바다가 인화되듯> 사람은 누구나 <바람부는 돛 두어 폭>에 실려 수평선을 넘어 멀리 가보고 싶어진다. 그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심리학을 <신의 빛>이 오는 곳, 즉 존재의 뿌리와 연결지어 신화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들은 하나하나의 개체이지만, 사랑과 빛을 발하는 신의 눈동자를 통해 보다 큰 다른 하나로 결속시키는 것이다. 비록 <신의 눈동자>는 <죽음의 씨>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생명의 씨>가 될 수 있는 형이상학을 지니고 있다.
김종문 『공허에서 연습곡』(현대문학)은 <공허>의 문제를 정현종의 시와 유사한 문맥에서 다루고 있다. 그는 비록 이 시에서 우주적인 현실을 이상학적으로 풀어 헤치고 있으나, 우리들의 관심을 요구하는 것은 표면에 나타난 허무주의가 아니라 추상적인 <공허>의 개념을 존재의 모태로 변형시켜 하나하나의 인간을 전체로 결합시키는 시인의 수사학이다. 그러나 <공허>란 말이 이 시의 공간에 바둑판의 포석처럼 놓여 있지만 보다 간결한 시적 여백이 아쉽다.
김승희는 『그네 위에 앉은 채로』(월간중앙)에서 뿌리뽑힌 현대인들이 움직이는 처절한 모습을 자학에 가까운 반항과 짙은 「페이도스」 속에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성공한 것은 쫓기며 부침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무의미한 생활을 형상화한 것만이 아니라, 존재의 덫에 걸려 죽음의 가위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시간의 찰과상 속에서 위아래로 난폭하게 흔들리는 웃지못할 인간현실을 전음계로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생의 기복과 곡선을 강약의 운율 속에 담은 것은 크게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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