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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의 국제정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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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례없이 어수선한 세모를 맞이한다. 지나간 한해와 70년대를 되돌아 보면서 이제 조용한 성찰을 가길 때가 되었다.
우선 1979년의 국제정세를 회고해 볼 때 이 해 역시 전쟁과 살육, 국제경제질서의 동요, 강대국 관계의 유동성이란 만성적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새해 벽두 「베트남」군은 이웃 「캄보디아」에 침공하여 인지연방의 야욕을 노골화했고 이어서 2월엔 중공의 제1차 대「베트남」응징전이 감행됐다.
결과,「캄보디아」- 의「폴·모트」정권은「정글」로 사라졌고 중공이 얻은 것은 실속 없는 허세뿐이었다.「아시아」대륙의 공산권은 이 골육상쟁을 계기로 소련-「베트남」권과 중공-북괴추축으로 완전히 양분됐다. l979년은「아시아」공산권의 내분이 마침내 고전적 정복전쟁의 형태로까지 확대된 해로 특기될 만 하다.
인지반도에 강력한 전진기지를 확보한 소련은 그 여세를 몰아 「아프가니스탄」을 준위성국화하고, 「페르시아」만에서 일본주변에 이르는 해로에 압박을 가해왔다.
소련의 이 같은 남진정책에 대해 미국은 1월1일의 미·중공수교 및 3월27일의 「캠프·데이비드」협정의 조인으로 대처하려했다.
미·중공 수교는 양국간의「30년 적대」를 청산함과 아울러 양국 공동의「대소 제휴체제」를 발족시켰다. 그 이면에는 중공의 현대화 의욕과 미국의 시장확보욕이 또 하나의 접점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중공은 이를 기점으로 전세계적인 반소통일전선 구축에 박차를 가해 연초에는 등소평이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고 10월에는 화국봉이 서구4개국을 순방했다.
이 전방위 방문외교에서 중공수뇌들은 각국에 대해 소련패권주의의 위험성을「선교」하는 한편, 자본·기술·무역분야의 상호협력을 얻어냈다. 그러나 중공이 과연 이『서방으로의 대장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군사성을 띤 협력까지 확보했느냐하는 것은 앞으로의 주목거리다.
「캠프·데이비드」협정은「이집트」-「이스라엘」의 제휴에 기초한 중동 친미권의 구축을 노린 것이었다.
중동사태의 핵심이라 할「팔레스타인」문제해결을 뒤로 미룬 채 조인된 이 협정은 미국의 군사력, 「이스라엘」의 기술, 「이집트」의 노동력과 시장,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를 한데 묶자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 청사진은 「페르시아」만의 「팔레비」왕정이 붕괴되면서부터 급속히 퇴색했다.「팔레비」왕정의 붕괴와 「이란」회교혁명의 폭발은 전후 미국이 겪은 3번째의 큰 실패였으며, 중동·「페르시아」만 일대의 기존 안보체제를 근저에서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이른바「원호의 위기지역」이 격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터키」와「파키스탄」과「이란」 및 북아를 연결하는 원호형의 전략요충에선 그 후「호메이니」선풍으로 상징되는「시아」파 회교도의 복고적인 반서방·반미폭동이 격렬한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
70년대 말이 목격한 최대급 정치·문화현상의 하나라 할 이「회교세의 반란」은 중근동 영역에 걸쳐 오랜 미국적 기존체제 전부를 타파하려했다. 석유이권이 도전 받고 유가인상이 고취되었다.
「이란」혁명의 여파로 유가는 지난 6월 「배럴」당 18∼23.5「달러」의 이중가격 제가 실시되었고, 조만간 30「달러」유가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
결국 「아시아」·중근동의 전략요충과 해상 유송로에서 미국은 79년 한햇 동안 계속「호메이니」와 「크렘린」의 도전에 직면해온 셈이다.
이 도전에 대해 미국은 대 중동「10만 기동타격대」창설로 맞서기도 했으나, 그 병력은 서태평양의 기존부대로부터 차출해내는 이른바「스윙」전략을 명백히 함으로써, 동북아 방위상 또 하나의 문제점을 야기 시켰다.
미국은 여전히 서구 및 중동을 동「아시아」보다 더 중시하는 선별적 군사전략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전략에 따라 서구에「퍼싱·미사일」을 신규 배치하려 했으나, 지난 12월12일에 열린 NATO 합동이사회는「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등 소국의 이견에 부닥쳐 「대소협상」을 염두에 둔 유보적 결론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것은 소련의「대항조치 운운」에 대한 일부 서구 중소국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며 미국 「리더십」의 문제점이란 평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79년「유럽」의회의 개원이 상징하는 서구의 정치적 향방이 주목된다.
미·소·중공·서구, 그리고 일본 등 강대국들의 이합집산이 이렇듯 세계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이 미·소간의 제2차 전략무기 제한협정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안정의 열쇠」란 감명을 주지 못한 채 세계는 갈수록 군확경쟁의 열기속에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전도에 직면한 지구도처에는「선상난민」이다. 전재민이다. 인질이다하는 인간비극이 끊일 날이 없다. 80년대 자원난 시대를 앞에 둔 인류의 장래, 그리고 한국의 진로를 심사숙고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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