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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 70년대>(5) 서독축구계에 차범근 돌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70년대에 들어 한국 「스포츠맨」의 해외진출이 꼬리를 물어 이들의 성공적인 활동은 괄목할 민간외교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중 특기할 일이 축구선수 차범근의 서독「프로」「분데스·리가」진출이다. 「아시아」가 낳은 명선수 차범근은 우리나라선수로는 환상의 무대였던 「분데스·리가」의 명문 「프랑크푸르트·아인트라하트·팀」에 79년7월16일 입단한후 8월11일 정식 「데뷔」를 했고 이후 12월15일 79년도 「시즌」이 끝날때까지 불과 4개월동안 빛나는 활약을 펼쳐 일약 서독「프로」계의「톱·클라스」 선수로 부각, 선풍적인 명성을 떨쳤다.
발군의 「스피드」로 「갈색의 폭격기」라는 칭송을 받고있는 차범근은 단숨에 「프랑크푸르트」의 부동의 공격수로 자리를 굳혔으며 「분데스·리가」 득점「랭킹」 공동4위에 올라 한국축구 뿐만아니라 서독 「프로」 축구계에 79년도의 최대화제거리가 된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생소한 서독축구계에 던진 차범근충격은 실로 한국「스포츠」사를 빛낼 쾌거였다.
차범근은 서독「프로」진출 이전에도 70년대의 시작과 함께 최연소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어 한국축구가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굳히는데 핵심적인 공헌을 했다. 이 때문에 70년대 한국축구는 「차범근시대」라는 표현으로 압축되기도 했다. 「슈퍼스타」 차범근의 성공은 한국선수도 세계정상「프로」축구에서 뛸수있다는 입증을 보여 처녀지 개척은 높게 평가되고있다.
이외에도 60년대부터 줄기차게 해외로나간 1천여명의 태권도사범, l백29명의 유도사범등 무도지도자들은 세계6대주 곳곳으로 확산, 「스포츠」한국의 전위기수가 되었으며 변호영의 75년「홍콩」 「세미·프로」 축구진출을 비롯, 배구·농구·탁구·축구등 일부 구기종목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대거 수출된 것도 70년대 한국「스포츠」의 득이한 일면인 동시에 커다란 변천상의 하나였다.
태권도·유도등 제외한 구기종목 지도자와 선수의 70년대 해외진출 현황을 보면.
◇배구 ▲지도자=박대희(서독) 박무 (캐나다·현재는 전업) 박지국(멕시코) 유승환(캐나다) 박만복 석학수(이상 페루) 손영완(아르헨티나) 김영대 표공일(이상 쿠웨이트) 구연묵(바레인) 심재화 장종구 한명섭 박윤권 정동기 황승언(이상 사우디아라비아) 민웅기(카타르) ▲선수=이선구 이춘표 이순직(아랍토후국) 박기원 조혜정(이상 이탈리아)
◇농구 ▲지도자=이상욱 김동규 김계완 정윤수(이상 사우디아라비아) 유희형 방렬 최종규 이재흠(쿠웨이트) 주희봉(대만) ▲선수=최혜란 신인섭 이옥자 조경자 조명옥(이상 일본)
◇탁구 ▲지도자=김창제 홍종찬(이상 리비아) 김명호 이재화 소영인(이상 아랍토후국) 주한송 김진업(이상·바레인) 주창석(베네쉘라) 윤현채 윤세룡 유중렬(이상 사우디아라비아)
◇복싱 ▲지도자=신현옥(카타르)
◇축구 ▲지도자=박경화(아랍토후국) ▲선수=변호영 김재한 박수덕 박이천 강기욱 임태주 문구호 강봉현(이상 홍콩) 차범근 김진국(이상 서독) <박군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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