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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흐름에 새삶 모색것은 사실이나|폭력빌어 민주주의에 도전한건 용납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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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 서언
본 검찰관은 이 사건에 대한 검찰관측의 의견을 밝히기에 앞서 고박정희각하의 서거를 애도하며 삼가명목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높은 안목과 신중한 태도로 본건을 소상히 심리해 주신 재판관님들께 만강의 경의를 표하고, 상대방 당사자로서 이사건의 실체적 진실발견에 전력을 기울여주신 변호인 여러분의 노고에도 심심한 사의를 드립니다.
본 검찰관도 이 법정에 계신 재판관·변호인및 방청객뿐만아니라 온국민의 지대한 관심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이란 중대성에 비추어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피고인과 아울러 역사와 국민앞에 심판을 받는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슴깊이 절감하고 사건수사에서 공소제기및 공판관여에 이르기까지 국가안전 보장이나 사회안녕질서를 극도로 위태롭게 하지않는한 한점 의혹없이 사실의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이사건을 둘러싼 왜곡되고 날조된 허위사실의 유포를 사전에 방지하고 국민에게 신속·정확히 사실 그대로를 알리기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사건에 임해왔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돌이켜보건대 이 사건당시 우리국가와 국민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그 중요성을 살펴보면,대외적으로는 공산주의집단가운데 가장 호전적이라는 북괴가 한시의 틈도없이 직접·간접으로 유형 무형의 침략적 도발을 자행하여 사회혼난을 획책하고 무력남침의 기회포착을 위해 광분하고 있었읍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사건 직전 남조선민족해방전선관계자들이 체포되어 밝혀진 전모와 이사전 직후 휴전선상의 대대적인 군사이동이 있었다는 보도등을 통하여 볼때 더욱 명백히 확인된바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세계적인 자원난, 특히 석유가의 급등과 경제강국들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우리경제가 수출부진·경기후퇴·고물가라는 3중의 고통속에서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해있었읍니다.
따라서 그 어느때보다 국민적 단합과 국가적 안정이 절실히 요구되었고 순간의 방심이나 헌정질서의 중단이란 상상조차 할수없는 시점에서 정치체제의 정점에 서있는 국가의 영도자를 잃게되는 비운을 겪었읍니다.
만약 이 사건의 충격과 역사적시련을 의연하게 흡수하고 질서있게 극복하는 국민적 슬기와 자제심이 없었다면 우리 국가와 사회는 혼란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나라와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할 위험성마저 배제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본건 공소사실에 대한 제반 증거는 이미 증거조사과정에서 모두 현출되었고 구체적 내용은 이미 제출한 증거목록 기재와 같으며 법률적용에 관하여는 송소상기재와 검찰관의 역명을 통해서 명백하여졌다고 판단되므로 사실론과 법률론, 증거론은 생략하기로 하고자 피곤인등에 대한 형량결정에 참고가 될 정상만울 살펴보고 구현에 이를까 합니다.
2, 정상론
국가의 요직에 있으면서 국가원수를 측근에서 모시던 자들이 그를 맹종하는자들과 더불어 신의와 정의를 저버리고 대통령각하와 그 수행원을 살해하여 내란을 획책한 피고인들에게 무슨 정상을 살필 필요가있겠읍니까마는 본건 범행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번 정리하고 재판부의 피고인들에 대한 행위 평가에 도움이 될까하여 잠시 피고인 개인별로 그 정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피고인 김재규에 대하여 살펴보겠읍니다.
첫째로, 피고인은 보건 범행의 동기를 전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민주회복을 위한 혁명이란 대외명분을 주장하고 있읍니다마는 공판과정에서 밝혀진 바와같이 이는 전혀 날조된 거짓임이 판명되었읍니다.
혁명을 한다는 사람이 위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안보적 상황을 무시한채 어제까지 체제의 주도적 입장에 있던자가 하루아침에 돌변하여 체제타도를 외치면서 덜컥 대통령만 시해하면 모든 국민이 자신을 적극 지지호응할것이라는 과대망상과 막연한 기대에 젖은것을 미루어볼때 본건 법행동기는 오히려 정권욕이나 개인적 감정의 처리라는 탐욕성과 충동성이란 천박한 편린만을 엿보이게 할뿐입니다.
둘째로, 이사건의 범행의 전과정은 바로 폭력에 의한 정부전복기도이며 그방법에 있어서 지극히 잔인하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타협과 설득을 통한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정체입니다. 실사 피고인의 동기가 지극히 순수하고 숭고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폭력적 수단으로 정부전복을 기도한다는 것은 폭력의 악순환만을 되풀이 할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위협으로서 국가는 그 자신의 존립과 안전을 위하여 이를 대역죄로 다스릴수 밖에 없읍니다.
더우기 피고인과 대통령각하와는 상하관계이전에 동향이고 군대동기이며 생사고락을 같이한 친형제간보다도 더 친밀한 사이로서 피고인의 지금까지의 지위와 생활이 대통령의 깊은신뢰없이는 불가능 하다는점에서 보더라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총격을 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쓰러져있는 대통령의 두부를 향하여 확인 사살까지 자행하고야 마는 잔인성을 지녔다는 것은 곧 인윤을 저버린 인면수심의 행위로 밖에 볼수 없읍니다. 이점에서 피고인의 인간적 배신의 가증성과 수단의 잔인성에 국민의 분노가 집중되고 있다고 봅니다.
세째로, 본건 범행의 결과에 관하여 살펴 보기로하겠읍니다.
혹자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민주정치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니만큼 피고인들의 본건 범행에 정장참작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읍니다.
본 검찰관의 좁은 소견인지는 모르겠으나 변호인단이 김재규피고인을 굳이 『김재규 장군』이라고 호칭하면서 개인적인 존경의 마음을 표현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 연유된것이 아닌가 추측도 해 보았읍니다. 분명히 피고인들의 본건 범행이 민족사의 흐름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였고 우리민족이 새로운 정치적 삶을 모색하도록 한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민족사의 흐름은 피고인 김재규와 나머지 일곱 피고인들의 행위에 의하여 바꾸어질 수있는 성질의것이 될수없으며, 이 사건이 우리나라 정치적 방향실정의 한 역사적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무수한 역사적시련과 역경을 슬기릅게 극복하고 오늘의 현대사회 주역이 될수있는 축적된 민족의 역량을 바탕으로 이 국가적난국과 시련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우리민족 전체의 발전과 도약의 계기로 삼아보려는 현명한 국민의 간절한 기대와 의사및 이에 바탕을 둔 현정부의 정치발전의지와 계엄당국의 헌신적 노력에 기인하는 것이고 이는 마치 북괴의 남침에 대비하여 군사적·경제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우리의 국민적 노력을 북괴의 덕택으로 돌릴수 없음과 같이 명약관화한 사실입니다.
뿐만아니라 만일 피고인들의 범행초기에 적발, 분쇄되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와 같은 민주발전의 노력이 시작될수 있었는지 이사건을 수사한 본 검찰관으로서는 깊이 의심치 않을수 없읍니다.
②다음으로 피구인 김계원에 대하여 살펴보겠읍니다.
피곤인은 육군대학총장·제6군단장·제1군사령관·육군참무총장등 군 주요지휘관을 거쳐 중앙정보부장까지 역임하였으며 범행당시에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읍니다. 따라서 피고인은 국가의 독립및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임을 지고있는 대통령이란 직책의 중요성을 그누구보다도 잘알고 있었고 자신의 직책 또한 대통령의 분신이라 할만큼 중요한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누적되어온 차지철전경호실장에 대한 개인적 감정에서 피고인 김재규로부터 차지철을 제거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이에 동조하는 한편 피고인 김재규의 과격하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이에 대통령까지 살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고도 그후 벌어질 일련의 상황전개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김재규의 의도에 호응함으로써 자신의 직무를 저버리고 본건 범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국가의 요직에 있는 이러한 피고인이 국가와 민족의 안위에 대하여는 추호의 염려도 없이 개인적인 수모에 대한 보복과 목전의 일신상 영달만을 추구하여 본건 범행에 가담하였다는것은 국가와 국민 전체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아니할수 없읍니다. 또한 고박정희대통령각하와는 오랜 군생활과 관직생활을 거쳐 깊은 인간적 신뢰관계를 맺고있었다는 점에서 피고인은 인간적으로도 추악한 배신자였다는 비난을 모면할수 없을것입니다.
뿐만아니라 피고인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후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이 빠져나갈수 있는 구실을 만들기위해 김재규의 범해을 동조하면서도 계속하여 사태의 진전을 주시하다가 국방부 장관실에서 열린 국무희의에서 계엄선포시기및 사유에 관해서 논란끝에 사태가 김재규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에게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기회주의자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만약의 경우 김재규의 거사가 실패할때에 대비하여 자신의 보전책을 강구한 행적에 대하여는 역겨움을 금할수없다 하겠읍니다.
③나아가 피고인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등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읍니 다.
피고인들이 피고인 김재규의 내란행위에 가담하여 반국가적·반민족적이고 잔인한 살육행위를 자행하였다는 점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것입니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안전과 직결되는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정보부직원이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읍니다.
물론 피고인 박선호는 피고인 김재규와 사제지간으로서 인연을 맺은 이래, 피고인 박흥주는 피고인 김재규가 사단장 재임시부터 전속부관으로 발탁된 이래, 각각 피고인의 신임을 얻어 측근에서 심복으로 지내왔으며 피고인 이기주는 피고인 박선호로부터 같은 해병출신인 점등으로 인하여 신임을 얻어왔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피곤인들이 저지르려고 하는 행위가 국가와 민족의 존망을 위태롭게하는 범행이었다는 점을 생각할때 피고인들이 위와같은 인간관계에 있었으며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여야하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그 행위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 아님은 피곤인들 자신들이 법의 판단을 받기에 앞서 알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신성한 당법정에 이르러서도 범행을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피고인 김재규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있는바 이러한 사고방식에 본검찰관은 전율을 금할수 없으며, 이는 곧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에 대하여 먼저 충성을 다하여야한다는 근본도리를 저버리고 일신상의 안정과 영달만을 도모하는 행위로서 피고인들을 국가에 대한 비신자라고 규탄하지 않을수 없는 바입니다.
특히 피고인 박선호는 해병대령출신이며 피고인 박흥주는 현역대령으로서 국가에 대하여 그 목숨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고급군인의 신분이면서도 개인의 안정과 영달을 위하여 적의 심장부를 겨누어야할 총을 국군통수권자로서 최상급직속상관인 대통령과 그수행 경호원들을 살해하는데 사용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반역행위라고 보지않을수 없는것입니다.
또한 피고인 박선호는 이기주에게 다시 김태원에게 경호실장과 경호원들에 대한 확인사살을 실시하도록 하였읍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단한마디의 지시로 사람을 살해하게하고 또 그지시에따라 총격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충격을 가한 위 피고인들의 행위는 잔인의 극에 달하는 행위며 그들에게 과연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조차 있었는지의심하지 않을수없읍니다.
④끝으로 피고인 유석술에 관하여 살펴보겠읍니다.
피고인은 은닉한 총기들이 대통령과 경호실장및 경호원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탈취하려는 대역행위에 사용된것임을 알았으면서도 이를 은닉하였읍니다. 물론 동피고인이 위 피고인들의 내란행위에 적극 가담한것은 아니지만 그 증거물들을 은닉함으로써 이를 은폐하려고 하였다는 것은 이에 동조내지 가담하려는 의사로 볼수 없는 바가 아닙니다.
이 역시 국가에 대한 충성 또는 의무보다는 개인의 안정과 영달만을 추구하고 나아가 국가형사사법권의 행사를 방해하는 범죄 행위로서 이에 상응한 최대한의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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