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박한 밥상이 모두에게 이로운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83호 26면

저자: 이순자 출판사: 청강문화산업대 출판부 가격: 비매품

남 해먹이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집으로 사람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무슨 음식을 해도 뚝딱이고, 맛있기까지 하다. 저자는 그런 사람이다. 누구인가 하면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 때 순직한 고(故)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부인이자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2001년 정년 퇴임한 이순자(76) 명예 교수다. 책은 청강문화산업대학의 청현문화재단이 우리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인물과 주제를 선정해 출간하는 ‘향기로운 책 시리즈’ 첫 번째 기획물로 나왔다. 무료 배포용으로 2000부를 찍었는데 소진된 뒤에도 찾는 이가 많아 이달 말엔 판매용으로 2쇄를 내놓을 예정이다(문의: 청현문화재단 사무국 02-2202-6653).

『따뜻한 밥상』

가정학 교수도, 요리 연구가도 아닌 그가 음식 에세이를 쓴 건 말하고 싶은 게 있어서다. 서문에 밝힌 저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젊은 세대가 마음과 정성이 들어 있는 음식의 의미, 나아가 그 음식을 나누며 이룰 수 있는 인간의 소통과 공감의 소중함, 공동체의 소속감 같은 메시지를 얻기 바란다.”

음식의 가치는 한없이 크다지만 정작 그가 말하는 먹거리란 소박하기 그지없다. 푸짐한 밥상보다 사랑과 유대감이 느껴지는 식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름 짓자면 ‘따뜻한 밥상 철학’이다. 그래서 저자는 겨울에는 따끈한 미역국에 명란과 김이 있으면 되고, 여름에는 오이소박이나 열무김치 아니면 아삭한 오이지면 충분하단다. 어머니가 즐기던 일상 음식이 ‘소울 푸드’로 이어지면서 온기를 주는 음식이 됐기 때문이다.

손님 초대상 역시 단출해도 정성이 깃들면 그만이다. 한두 개 요리를 손쉽게 만들자는 주의다. 자신의 경험 역시 그러하다. 남편은 업무 차 만난 사람들을 종종 집으로 부르곤 했다. 보통 주부 같으면 질색팔색을 하련만 그는 기꺼이 상을 차렸다. 떡 벌어지는 한 상 차림 대신 샐러드 하나, 고기나 생선으로 만든 주 요리 하나, 과일과 차로 마무리하는 디저트로 코스를 꾸미니 딱히 어려울 게 없었다. 일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원칙대로 하니 손님들도 즐겁고 본인도 행복해지는 일이었다. 이렇듯 저자는 소박한 밥상이 진정 모두에게 이로운 밥상이라고 말한다.

‘집밥이 제일 쉬웠어요’라는 얘기인데, 이를 위해 유연성과 융통성이 전제돼야 한다. 시판용 팬케이크 믹스에 과일을 넣어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거나, 진짜 콩국 대신 두부와 두유를 갈아 잣을 첨가하는 식이다. 레시피대로 모든 재료와 정량의 소스를 챙기는 방식이 즐거운 요리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융통성이 평소 생각으로 이어진 것인지 ‘남자도 자기 먹거리는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외국 음식을 편견 없이 즐겨보라’는 얘기도 뒤따른다.

평생 후학을 키워낸 학자답게, 손자 셋을 둔 할머니답게 책은 이런저런 당부를 빼놓지 않는다. 스스로 샤워하듯 혼자서도 끼니를 찾아 먹는 생존 교육은 물론이요, 테이블 매너와 인성을 키워내는 밥상머리 교육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부분이 인상적이다. 뭣보다 음식을 함께하는 것이 곧 문화를 공유하는 중요한 가치임을 말해주는 몇몇 대목은 ‘1인 가구’와 ‘먹방’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깊은 울림을 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