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이론과 한국의 소득 불평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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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30면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의해 제기된 상류층의 소득집중 문제가 지속적인 관심과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소득세 자료를 이용해 국가별로 100년 간 상위 소득자의 소득집중도의 추이를 추정했다. 그 결과 영·미계 국가의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수준으로 높아졌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고소득세율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에 대해 현재 전세계적으로 찬반의 흑백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근거가 모호한 주장은 배격하고, 그의 연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시사점을 고민해 보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 생각한다. 특히 다음 두 가지 사항이 현실적인 관심사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비중이 2012년 45%로 미국의 50%에 이어 두 번째로 불평등한 국가인가라는 문제다. 두 번째는 이에 따라 현재 38%인 우리나라 최고소득세율을 향후 올려야 하는가의 문제다.

먼저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인가. 답은 ‘그렇게 단정할 수 없다’다. 왜냐하면 소득 불평등도의 절대적인 비교기준으로 상위소득자의 소득 점유율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피케티와 공저자들이 국가별로 상이한 소득기준, 가구냐 개인이냐의 소득측정 단위 차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광범위한 인구의 존재 등의 이유로 국가별 추정치에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최고소득세율을 올릴 것인가. 답은 ‘고민할 필요가 있다’다. 피케티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 영·미계 국가들의 상위 1% 소득집중도는 100년 전의 수준으로 높아지는 U자형 추이를 보이고 있다. 반면, 프랑스·독일·스웨덴 등의 유럽국가나 일본은 집중도가 낮아진 1950년대 수준을 유지하는 L자형을 보이고 있다.

모든 국가에서 1950년대까지 소득집중이 낮아진 이유로는 세계대전으로 인한 자본의 파괴, 전시의 물가 상승, 대공황으로 인한 부의 손실과 근로소득의 평준화, 높은 누진세와 상속세의 영향이 제시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영·미계 국가들의 상위 1% 소득집중도가 높아진 이유에 관해 피케티는 기존과 다른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소득불평등 확대의 원인으로 흔히 지목되던 기술진보와 세계화와는 달리 피케티는 최고세율의 하락, 노동시장에서의 고소득층의 임금 교섭력 강화, 성과급의 확산에 주목했다. 즉, 전세계적으로 최고세율의 하락과 부자에 대한 소득 집중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낮은 세율이 기업가 정신을 고무시켜 경제활동을 촉진한다는 기존의 이론과는 정반대의 시각이다. 오히려 높은 세율에서는 임금 결정방식에 무심하였던 고소득자들이 세율이 낮아지면서 임금 결정에 개입하여 자신의 임금이 생산성을 초과하도록 결정함으로써 소득집중을 발생시켜 왔다는 견해다. 또 이러한 이론적 근거와 더불어 최고세율과 경제성장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최고경영자의 임금수준은 최고세율과 반비례한다는 실증분석 결과도 제시하고 있다.

1980년대 최고세율 삭감은 미국 레이건 정부나 영국 대처 정부의 탈규제라는 제도적인 변화와 동반된 것이었다. 따라서 피케티가 보여준 세율과 상위소득 비중의 관계는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최고세율의 하락이 임금 결정방식에 영향을 주었고, 생산성을 초과하는 성과급여의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은 상당히 유력해 보인다.

우리나라는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의 소득집중도는 소득구간자료를 이용하여 추정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비율이 40%에 달하기 때문에 전체소득의 추정에도 한계가 있다. 소득세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소득분포를 추정할 수 없는 현실은 올바른 정책결정의 장애요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소득분포 유형이 불평등도가 높은 영·미형에 가깝다는 우려가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향후 당면과제는 국세청 자료를 이용하여 전체적인 소득분포와 더불어 고소득층의 소득비중이 장기적으로 어떤 이유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최고세율의 결정은 그 후에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경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을 거쳐 현재 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전공은 고용과 노동. 저서는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구축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비정규직 문제 종합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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