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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땐 학생운동 … 법정소설 쓰고 싶어 변호사 선택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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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광주 광산을에 전략공천을 받은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지난 10일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출마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찬 프리랜서

7·30 재·보선에서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권은희(40). 그는 보름 전만 해도 경찰이자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축소·은폐 의혹의 내부 고발자였다. 2012년 대선 직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으로서 국정원 댓글 사건의 초기 수사를 맡았고, 지난해 4월 경향신문 인터뷰 등에서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이 수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권은희와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란 단체가 생길 정도로 야권에선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런 그가 ‘야당 공천=의원 배지’가 성립하는 광주에서 전략공천을 받으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새누리당은 “국회의원 자리를 얻으려 경찰의 명예를 팔았나”며 공격한다. 그는 11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하며 직업란에 ‘정당인’이라고 적었다. 중앙SUNDAY는 ‘인간 권은희’를 알아보기 위해 지인들을 접촉했다. 새정치연합의 전략 공천 과정도 복기해 봤다.

광주 토박이 … 부친은 교사 출신
권 후보는 광주에서 태어나 조선대여고, 전남대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광주의 딸’이라 불리게 된 배경이다. 지난해 4월 문희상 당시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에서 처음 그렇게 불렀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권 후보 가족들이 지금도 광주에 산다”며 “광주에서 후보가 이동할 때 여동생이 차를 운전해주더라”고 전했다. 부친은 광주에서 교사로 일하다 퇴직했고, 권 후보는 1남3녀 중 차녀다.

권 후보는 대학 시절엔 학생 운동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학과 선배 조상균 전남대 법대 교수의 기억이다. “당시 전남대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1991년 분신 자살한) 박승희 학생이 나온 곳인 데다 공안정국이어서 집회와 시위가 많았다. 권은희 후배는 시위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학생회의) 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야학과 농활에도 참여했을 거다. 그때도 말을 딱 부러지게 논리적으로 잘했다. 최근 TV로 보니 대학 때와 달라진 게 없더라.”

권 후보는 2001년 사법시험(43회)에 합격하고 2004년 결혼한 뒤 남편의 고향인 청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다. 하지만 1년2개월 뒤인 2005년 경정 특별채용에 응시, 용인경찰서 수사과장이 된다. 그는 2005년 ‘최연소 여성 수사과장’으로서 한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법정소설 작가가 되고 싶어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초동 수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사건의 본질에 가장 접근한 사람은 초동 수사 단계부터 피의자와 대면하는 경찰 수사관이다.”

그의 짧은 변호사 활동에 대해선 말이 엇갈린다. 권 후보는 인터뷰에서 변호사 시절 수입에 대해 “경찰직과 저울질할 때 솔직히 고민했을 수준”이라 했다. 인터뷰 기사엔 “지역의 유일한 여성 변호사로 가사·민사소송 의뢰가 많았다”고 소개돼 있다.

그러나 본지가 접촉한 청주 지역 인사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여성 변호사가 드물어 관심을 끌긴 했지만 사무실 운영이 어려웠던 것으로 안다. 다른 변호사들이 권씨를 시기해 만든 소문일 수도 있지만 ‘권씨가 브로커를 동원해 형사 사건을 수임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래서 지역 변호사회가 조사에 나섰다고 들었다.” 본지는 사실 확인을 위해 당시 청주 변호사회 간부였던 김모 변호사 측에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권 후보의 치밀한 성격은 그의 대학원 논문에 드러난다. 그는 지난해 2월 연세대 법대 대학원에서 쓴 ‘사기 범죄의 성립 범위’란 석사 논문에서 2011~2012년 수서경찰서에 접수된 사기 사건 176건을 분석해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도를 맡았던 전지연 교수는 권 후보가 지난달 20일 경찰에 사직서를 낸 직후 “박사과정에 복학할 것 같다”고 말한 것과 관련, “그전부터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고 했었다”고 했다.

당 분위기 “문제있지만 일단 지원”
공부를 하겠다던 마음이 바뀐 건 언제일까. 그는 공천 다음 날인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표를 제출할 때까지 재·보선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2013년 말 ‘공익제보자의 밤’ 행사에 초청돼 공익제보자들을 만났는데, 공익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 뜻을 지키려는 모습이 놀랍고 고마웠다. 그런 모습을 퍼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부담처럼 남아 있다가 (9일 김한길 대표가 전화했을 때) 결정했다.”

하지만 정치권엔 “당 지도부가 권 후보를 염두에 두고 광주에 출마했던 기동민 후보를 서울로 올렸다” “전남대 법대 선배인 최재천 의원이 역할을 했다” “김한길 대표가 권 후보 부친을 통해 설득했다” “권 후보 남편이 정치권에 인맥이 있다”는 설이 넘쳐난다.

최 의원은 본지에 “(내 역할론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권 후보와는 나이 차가 많아 전혀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고 했다. 다음은 당 핵심 관계자의 말.

“당이 권 후보를 공천하기 위해 기동민 후보를 뺀 게 아니라 동작을에 출마하려는 기존 후보들의 지지율이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크게 뒤져 기동민을 투입한 거다. 천정배 전 의원을 광주에 공천하면 ‘중진은 어려운 지역에 나간다’는 원칙에 어긋났다. 그래서 8일 오전 10시부터 무려 14시간 동안 회의를 했을 때 처음으로 권 후보를 공식 논의했다.”

회의에선 권 후보의 출마 의사가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와 김 대표가 직접 통화하기 위해 회의장을 나갔다고 한다. 그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최고위원들이 ‘왜 안 오시냐’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논의했다면 통화 시간이 그렇게 길었겠나. 김 대표가 오더니 ‘긍정적인 의향’이라 했고 다음날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래서 9일 결정했다. 공천 일정이 촉박하니 최 의원 등 누구를 시킬 시간도 없어 대표가 직접 설득한 거다.”

?보은 공천’ 역풍을 예상할 시간도 없었다는 얘기다. 본지가 권 후보 공천에 대한 당내 여론을 알아보기 위해 10일 새정치연합 의원 126명에게 긴급 설문을 실시한 결과 통화가 이뤄진 43명 중 28명(65.1%)이 입장 표명을 보류했다. 공천에 찬성한 이는 13명(30.2%), 반대한 이는 2명(4.6%)에 그쳤다. 본지는 통화를 더 시도했으나 당 지도부가 “조사 의도가 무엇이냐”며 중단을 요구했다.

공천엔 문제가 있지만 일단 지원하자는 분위기도 상당하다. 당 관계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의 권은희가 아닌 자질 있는 정치인 권은희로 봐 달라. 며칠 지켜보니 세심하면서도 활기찬 인물이다. 오랜만에 ‘물건’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권 후보는 11, 12일 천 전 의원 등과 광주 의원들을 잇따라 만났다. 가톨릭 신자인 그는 일요일인 13일 종교시설을 도는 것으로 첫 유세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권 후보는 학자금 대출 등으로 빚 1억2000여만원을 지고 있으나 배우자의 순재산이 7억여원이라 총 5억여원의 재산이 있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다. 배우자는 화성시와 청주의 건물 두 곳에 상가 5개를 갖고 있어 부동산 재산만 9억5000여만원에 이른다. 비상장 주식도 1억4000만원어치 갖고 있다.

한편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설문조사=박종화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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