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리더십의 위기 : 대처 증후군, 박근혜 증후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롤 모델이다.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리즘이 바로 한국병을 치유할 수 있는 리더십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철의 여인’ 대처를 모델로 ‘원칙의 여인’ 박근혜의 모습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처 모델에 지나치게 몰입한 탓일까. 대처의 문제점까지 닮아가고 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1983년 5월 14일자에 ‘문제는 대처다’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그리고 1년 후인 84년 7월 7일자에 “여전히 ‘문제는’ 대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대처의 개성과 스타일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대처 2기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장 무능한 정부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언론 보도가 거의 예외 없이 이코노미스트의 사설을 연상시키고 있다. 모두 ‘대통령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제는 박 대통령의 개성과 리더십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2기 내각이 ‘가장 무능한’ 정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지금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과연 이 정부가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우려하고 있다. ‘잘못할 것 같다’는 전망이 ‘잘할 것 같다’는 전망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왜 그럴까? 대처 총리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 때문으로 보인다. 두 지도자의 공통점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거의 맹목적이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매우 대결 지향적이다. 민주정치의 요체인 타협의 정치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원래 보수 가치의 본질은 조화와 균형의 추구에 있다. 하지만 이런 대결적 리더십은 갈등과 적개감을 양산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 갈등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을 이루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제 이런 공언은 국민들 눈에 위선으로 비쳐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사의 기준이 도덕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충성심이다. 국정철학의 공유라는 명분으로 합리화하고 있지만 국민들 눈에 이것은 캠프 출신들에게 전리품을 배분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이런 인사에서 국민통합을 위한 통치동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평론가들의 지적이 의미심장하다. 박 대통령이 남의 얘기를 듣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정의 무대에서 이견이나 토론의 공간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대처 총리 시절 영국에서는 관리들에게 4분 이상의 보고는 금기 사항이었다고 한다. 이를 넘기면 대처가 레이저 눈빛을 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저 받아 적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의 모습이 아닌가.

 MB 정부 때의 한 인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MB 정부 때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회의를 봉숭아 학당이라고 비웃었는데 그렇게 흠잡을 것은 아니었던 같다”고.

 이런 리더십이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정책 결정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다.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비선이 설치고 내각이나 정당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이코노미스트 84년 7월 7일자에 ‘중요한 결정을 도와 줄 참모를 찾아 공관의 텅 빈 복도를 헤매는 대처 총리. 그러나 다가갈 곳은 무능한 ‘부엌 가신들’뿐. 판단 미스에 의한 실책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청와대의 닫힌 공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 대통령. 역시 중요한 결정을 위해 다가갈 곳은 소수의 ‘문고리 가신들’뿐. 장관과 같은 정책참모의 조언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대통령 자신이 가장 확실히 알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문고리 권력 몇 사람의 조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계속되는 인사실패와 국정혼란이다.

 ‘목구멍 넘어가면 뜨거운 것도 잊어버린다’는 속담이 있다. 박 대통령은 몇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되풀이되는 인사실패와 국정혼란을 보면 정말 목구멍 넘어가자마자 뜨거운 것도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여야 원내지도부와 회동했다. 회동의 정례화를 제안하는 동시에, 장관 후보자 두 명에 대한 야당의 지명철회 요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소통을 통한 타협정치의 신호탄인지 모른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박 대통령의 모습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