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최고의 한자발음 사전 『배자예부운략』발견|운따라 한자를 분류하고 글자마다 음과 뜻의 주해 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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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 나라 최초의 옥편이 붙은 천순본「배자예부운략」(배자예부운략)이 발견됐다. 지난해 고려대에서 인수한 김완섭 소장문고에서 나온 이 「예부운략」은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최고본으로 세조 10년(1464년)을해자로 찍어 간행한 운서다. 이 책의 발견으로 조선초기의 한자음 체계를 더욱 확실히 알게되었으며 최세진(1473∼l542)이 편찬한 「운회거요옥편」이 우리 나라 최초의 한자사전(옥편)이라는 종래의 통설을 뒤집는 귀중자료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모두 7권 3책으로 구성된 「배자예부운략」은 각 권 31.9×21.1㎝의 크기인데 이중 2권이 옥편으로 덧붙어 있다. 각 면 10행 18자·소자쌍행의 체재. 뒷면에 이연연 설천정 ■여이정이라고 인서돼있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해 가장 판심을 쏟은 국어학자는 전창균 교수(영남대)와 박병채 교수(고려대). 전 교수는 송나라때 정도이 편찬한 이 「애부운략」이 고려 이래로 과거응시자나 시작에 필수적이었다는 실록기사에 주목했다. 「세조실록」8년 6월초에 예조가 올린 글월에 보면 『선조부터 과거때는 오직 「예부운략」만을 사용해왔는데 앞으로는 「홍무정운」을 겸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당시까지 「예부운략」의 가치를 거의 독보적으로 평가해 왔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부운략」은 원래 당나라때부터 중국에서 전해지던 운서인 「광운」을 「다이제스트」해 과거응시자들이 이용하기 쉽게 편람식으로 만든 책이다. 한문자를 운에 따라 분류·배열하고 글자마다 음과 뜻을 주해한 오늘날의 발음사전격. 조선초기까지 과거에는 시부가 가장 중요한 관문이었으므로 「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시험응시자들에게는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적지 않은 「운략」이 배포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임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잔본이 소실되어 지금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지금까지 「유일본」으로 전해지는 것으로는 전교수가 지난 68년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동 선암서원에서 찾아낸 도주본이 있을 뿐이었다.
이 도주본은 전5권으로 권두에 만력을묘(1615년)에 쓴 구본서와 강희 8년(1679년)의 중간본서가 함께 붙어 있어 엄밀히 말하면 「강희본」이다.
전교수는 이와 함께 천순본의 서문으로 보이는 필사본도 입수했다. 이후 「천순본」이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번에 고대 김완섭 문고에서 찾아낸 것이다.
박교수는 무엇보다 고대본이 을해자본이라는 서지적 가치에 주목했다. 을해자는 갑인자와 함깨 조선초기에 주조된 대표적 동활자로 세조원년(1455년)에 강포안의 필체로 만들어졌다. 주「예부운략」중에 보이는 자체의 모양은 오히려 갑인자와도 비슷하여 시대가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도 점치고 있다. 갑인자는 세종16년(1434년)에 만들어졌으며 한글 창제후에 편찬된 운서 「동국정운」도 이 활자로 만들어진것이다.
전교수의 풀이로는 고려중기 충렬왕때 매계서원본이 이미 있었으며 시대가 바뀜에 따라 조선초기에 다시 「천순본」을 내면서 뒤에 색인력으로 「옥편」을 덧붙인 것으로 추정한다.
국어학계는 이 천순본 「배자예부운략」의 발견으로 조선초기에 이미 현재의 한자음이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었음을 알게되었으며 한자옥편의 사용 등 한자의 체계적 연구가 일찍부터 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크게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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