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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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카톨릭」은 「성인」이란 말을 예사로 쓰지 않는다. 교회가 공인하는 기적(영적)을 적어도 두번 이상 행한 사람으로 사후에 주는 경칭이다.
그러나 인도사람들은 살아있는 「테레사」수녀를 「성인」이라고 부른다. 칠순이 다된 할머니. 흰 무명의 인도의상(사리)을 걸치고 가슴엔 고상(십자가)을 늘어뜨리고, 아직도 젊은이 모양으로 뛰어다닌다.
「로마」교황청은 이미 「테레사」수녀에게 『「요한」23세 평화상』을 준 일이 있었다. 인도정부도 그에게 「로투스」훈장을 수여했었다.
그러나 「테레사」수녀의 행적은 무슨 훈장이나 존칭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1910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알바니아」인 부모사이에 태어났다. 12세 소녀시절에 벌써 선교사가 되기를 소망했다.
한 신부의 소개로 10대 소녀는 인도에 갔다. 수녀가 된 「테레사」는 「캘커타」항도에 있는 「성마리아」고둥학교의 지리교사로 첫 사회봉사에 나섰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 출신의 자녀들이 다니는 이 학교에서 그는 교장의 지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캘커타」의 현실은 교실안의 세계와는 너무도 달랐다.
빈민들이 수도 없이 길바닥에 쓰러져 배고폼과 병고로 죽어가고 있었다. 1946년 9월 10일 그의 말을 빌면 「하느님의 소명」을 받았다. 모든 것을 벗어나 빈민들을 위해 봉사할 결심을 한 것이다. 수녀복 대신 「사리」로 갈아입고 그는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에 버러진 아기들을 주워서 양육하고 나환자들의 상처를 치료하며 길에 쓰러져있는 빈민들을 흔들어 깨워 용기를 주었다. 고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게되면 양부모들을 찾아 가정으로 인도했다. 교황청도 그의 희생에 깊은 감동을 표시했다.
이 「테레사」수녀를 따라 똑같은 일을 하는 성로자들은 날로 그 수가 늘어났다. 1천명을 넘는 수녀와 남자수도자들이 세계 67국에서 그와 같은 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헐벗고 병든 사람들에게 건강과 식량으 줄뿐 아니라 삶의 용기와 의미까지도 찾아주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라 사랑의 빈곤이다.』
「테레사」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의 평생을 바친 체험속에서 우러 나온 말일 것이다.
오늘과 같은 세태에 작은 자선으로 크게 자만하려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묵연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드물다. 금년의 「노벨」평화상은 화려한 경쟁자들 가운데서 유독 「테레사」 수녀에게 영광을 주었다. 인류는 이런 사람들로 하여금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당연한 결과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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