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 찾아 나선 「민속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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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늦가을의 빈들에서 흥겹게 펼쳐지던 상모 쓴 농악대들의 춤과 징소리. 시골 장이 서는 날이면 해질 녘 파장 무렵 느닷없이 몰려와 장꾼들을 불러모으던 풍각장이들의 구성지고 애조 띤 장타령. 고작 이런 종류의 어렴풋한 기억들이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이 알고있는 전통 판놀음에 관한 모든 것이다.
14일 하오 덕수궁 뒤뜰에서는 판소리·선소리 산타령·판굿 농악을 구경할 수 있는 전통 판놀음이 벌어져 주말에 희미한 옛 기억을 일깨워주면서 한때를 고궁에서 보내려던 많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11일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제6차 「아시아」작곡가연맹 대회 및 음악제(「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위원회·국제문학협회 공동주최「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의 민속놀이가 그것이다. 그 옛날 저자와 빈들에서 열렸던 판놀음의 구경꾼들이 그랬듯이 이날의 구경꾼들도 고궁을 거닐다 노랫소리가 울려오는 곳을 따라 스스로 모여든 사람들이다. 남녀노소의 구경꾼들은 연희자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둥글게 모였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편안하게 다리를 뻗은 사람들. 뒷줄에 서서 자유로이 오가며 구경하는 사람들….
엷은 옥색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차림의 명창 박동진씨의 판소리는 『흥보가』중 『박타는 대목』. 『슬근슬근 박을 타세. 슬근슬근 박을 타세….』박씨의 노래는 고수 김득수씨의 노련한 장구반주로 더욱 흥을 돋운다.
이창배씨를 비롯한 다른 6명의 노래는 선소리(입창) 산타령. 모가비(모갑) 이씨가 장구를 치며 한 대목을 메기면 다른 6명의 선소리꾼이 소고를 치면서 다음 대목을 받는다. 산천경치를 노래한 속가는 씩씩한 남창.
본래는 불교포교와 시주를 목적으로 하던 남녀가무단에서 생긴 것이 남성 소리꾼에게 전승되어 선소리(서서 부르는 노래) 산타령이 되었다고 이보형씨(문화재전문위원)는 밝힌다. 이날 선보인 것은 경기도 선소리. 씩씩하고 구성진 노래였다.
꽹과리·징·장구·북의 타악기가 중심이 되어 흥겹게 펼쳐진 이날의 판굿 농악은 가락의 변화가 격렬한 전라 우도농악. 16세부터 장구를 치기 시작한 김성락옹(80)을 비롯한 황재기(55)·김병섭(59)·김옹업(49)씨 등 총 19명의 농악수들이 쓰러지듯 격렬하게 맴돌며 춤추고 소고를 치며 꽹과리를 울려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12자(척) 길이의 붉은색 채가 달린 장모를 쓰고 익살스럽게 머리를 돌려가며 원을 그리고 갖은 재주를 부리던 지운하씨의 묘기는 특히 음악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을 감탄케 했다.
이들 농악수들은 전라도 영광·고창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다.
전통 판놀음은 원래 넓은 마당에서 놀이패들이 일반 민중을 구경꾼으로 하여 음악·춤·극·곡예 따위를 공연하던 놀음.
놀이패의 놀이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가운데 줄타기·판소리·땅재주·춤 따위를 공연하는 재인광대패, 선소리를 합창하는 선소리패, 농악을 연주하는 걸립패, 민속악을 공연하는 풍각장이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한국서민들의 정서를 담은 흥겹고 격정적이고 요란한 가락과 춤사위 등을 그 특정으로 한다. 이번 덕수궁에서의 공연은 서민의 체취가 물씬한 민속놀이를 대중에게 심는 작업으로도 의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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