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은 움츠러들고 있다|불「레이몽·아롱」교수가 진단하는 오늘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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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대에 들어선 이래 대내적으로 정치·사회적인 대혼란을 겪은 미국은 국제적으로도 경제·군사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잃어왔다. 이에 비해 소련은 제3세계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군사력에서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이르러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을 앞지르기도 했다.
「프랑스」의 정치·군사평론가 「레이몽·아롱」교수는 근착「이카운터」지(영)에 『「양키」제국주의는 「러시아」패권주의로 이행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이 현상을 분석했다. 다음은 이 논문의 간추린 내용이다.<편집자주>
30여년전 국제정치를 이야기할 때 세계가 미·소 양극체제로 지탱돼 왔다는데 이론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중·소의 3극 체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더욱 다극화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등 국제질서가 종잡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되었다.
아직도 미·소가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전개돼온 다음과 같은 큰 변화들 때문에 이 양대체제를 바탕으로 했던 국제질서는 모호하게 되어 버렸다.
▲이른바 『사회주의 진영』의 분열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의 해석을 둘러싼 혼선 ▲미·소관계의 불투명성 ▲포함외교의 한계(한때는 군사력의 시위가 외교의 유일한 수단이었으나 이제는 문화·과학·무역 등 모든 요소가 외교의 수단이 되고 있다) ▲경제분야의 밀접한 상호의존성 등의 요소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어떤 단일세력이 우위에 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한때 소련에 대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미국의 군사력도 위협을 받고 있고 미국경제의 세계지배 역시 옛이야기처럼 되었다.
70년대 말의 정치·경제분야의 국제관계를 한마디로 명확하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메리카」제국시대가 소련패권주의의 그늘로 얼룩져 간다는 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관측통들 중에는 ⓛ미국이 추진한 전략무기제한회담(SALT)은 핵 전력에 있어 소련을 대동한 수준으로 이끌어 올려 결국 「탱크」나 병력이 우세한 소련이 군사적으로 우위에 서게 되고 ②세계시장에서 주도한 국가들의 사회적·정치적 혼란을 진정시킬 수 없는 미국의 무력 때문에 이들 국가가 미국에 등을 돌리고 ③무역경쟁국에 대한 미국의 우위상실과 만성적인 「달러」위기 등을 이유로 들어 『「아메리카」공화국』이 몰락 중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미국은 최근 들어 위협받는 다른 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미국이 지난 세기말 북미대륙을 석권한 것을 빼놓고는 제정「러시아」나 소련의 「제국주의」에 비교할만한 「미국제국주의」라고 할만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반해 소련은 군사력으로 동구에 대한 지배를 확보하고 이른바 「사회주의 공동체」정권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있다.
동서간의 이해가 직접·간접으로 마찰을 빚고있는 「아프리카」·중동·「유럽」의 정세가 미국에 유리하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소련은 「쿠바」군과 소련군사고문단을 통해 세력판도에 큰 고지를 점령했으며 서방세계의 주요한 자원시장인 중동의 불안한 정세는 소련에 이익을 주고 있다. 「유럽」에서 서방국가들이 신뢰하고 있는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미국의 핵우산이 아니다.
서구국가들은 오히려 소련이 공격에 따를 위험과 서방으로부터 기대되는 경제적 지원때문에 「조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소련의 「신중함」을 더 신뢰하는 형편이다.
경제적으로는 세계의 기축통화노릇을 해온 「달러」의 가치하락이 미국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반란은 미국경제의 신화를 깨뜨려 버렸다. 세계시장의 안정은 옛날처럼 「달러」가 아니라 서방근대문화에 반감을 가지고있는 중간 산유국들의 손아귀에 좌우되고 있다.
게다가 이 지역의 불안한 정세를 안정시킬 만큼 미국은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의 정세는 소련의「패권주의」에 「플러스」요소가 되고 있다. 「이란」의 종교정권이 대소유화정책을 취하든 안 취하든 「이란」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거리를 둘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앞으로 다가올 80년대가 평온하고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기는 힘들다. 미국 자체 내에서 조차 초당파적인 통일된 정책을 찾지 못하고 확실한 경제전망이라든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상태다.
「이란」혁명은 우왕좌왕하는 미국외교에 의존해온 한 정권의 약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럽」에서는 소련이 2차대전의 「해방세력」으로서의 권위는 잃었다지만 세계 최강의 지상군을 이 지역에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군비증강이나 위험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는 실책을 알고나서도 서방세계는 계속 환상의 제물이 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소련패권주의자들의 신중함속에 가려진 영악함을 간파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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