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창간 14돌 기념 특별기획 의식조사를 읽고|유의영(사회학·「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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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합리화·미국화하는 교포들>
이번 중앙일보창간 14돌 기념특집으로 연재된 「재미한국인들-그들의 생활과 생각」은 미국 속의 한인「커뮤니티」가 겪고있는 모습과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잘 소개했다고 본다.
한인교포들중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충분히 구사할 수 없기 때문에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많은 불편을 겪고있는 것과 비교적 높은 교육수준과 직업수준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언어장벽과 인종차별의 벽에 부딪쳐 자기들이 원하는 직장에 종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등은 역사가 짧은 재미한인「커뮤니티」가 겪고있는 문제점들의 일면을 잘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번 조사는 한국이민들이 미국사회에서 새로운 경제적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역경을 뚫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고 이와 같이 열심히 일하는 결과로 일부 한인들이 성취하고 있는 경제적 발전의 모습도 잘 나타내고 있다.
재미한인들이 이와 같이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문화적 적응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미국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백인사회에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외로움을 겪고 있는 점도 잘 지적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일상생활에서나 또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구들이나 친척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한국이민들의 경제생활이 「합리성」을 띠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재미한인들의 의식구조가 「정적」인데서 「합리적」인 데로 흘러가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부모가 성장한 자녀들과 같이 살기보다는 「아파트」를 얻어 독자적 생활을 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는 것과 오락생활·취미생활이 부부 또는 자녀들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것도 재미한인들이 점차 미국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번에 연재된 조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재미한인들이 겪고있는 문제점과 이민생활의 모습을 표면적으로는 어느 정도 잘 기술하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의 원인을 분석하는데 있어서나 또는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는 데에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제한적인 표본, 현실왜곡도>
또 이 조사는 한국교포들이 겪고 있는 이민생활의 경험들을 너무 부정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조사상대를 어떠한 과정을 거쳐 무작위표본추출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조사에 나타난 내용으로 봐서 재미한인 중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주 대상이 된 것 같다.
특히 표본에 추출된 2천2백여명 중에서 약 반만이 응답을 했는데 이들이 재미한인 전체를 대표했다기 보다는 어느 정도 생활기반이 잡힌 중산층 이상의 교포들을 나타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이와 같이 제한성이 많은 표본추출자료를 분석해서 재미한인사회의 현황에 관해 기술하다보면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결론을 내릴 수도, 한인사회에 반드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교포가정의 연평균수입이 미국의 일반가정의 연평균수입보다 높다고 표본조사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를 표본추출과정의 제한성과 응답과정의 문제성에 비추어 주를 붙여서 발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번 조사가 한인단체들이 많아지는 것과 특히 교회의 수가 많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룬 것은 재미한인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초래된 것 같다.
경륜이 짧기 때문에 한인단체들이 조직에 있어서나 운영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많아지면 차차 해결이 될 문제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단체들을 통해 한인사회에 공헌하고 있고 또 한국이민들이 이러한 단체들을 통해 여러 가지 혜택을 받고 있음은 전혀 지적되지 않은 것 같다. 흔히들 미국에 한인교회가 너무 많다고 비판을 한다.

<한인교회, 좋은 역할 많이 해>
특히 교포들이 많이 몰려 사는 「로스앤젤레스」지역에 한인교회가 너무 많다는 비평을 자주 들었고 이번 조사에서도 그렇게 지적되고 있다.
미국의 한인교회는 정서적 기능 이외에 교육기관·봉사기관·직업소개기관으로서의 일을 하고있고 많은 한인교포들에게 다른 한인들과 만나서 말과 정을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 노릇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번 조사에서는 「동화」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쓰고 있다. 한인끼리 모이는 경향이 있고 빵과 「버터」보다는 밥과 김치를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한국이민들은 미국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인가. 한국사람들이 미국에 이민을 온 목적은 미국사회에 동화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식들과 자손들을 위해 좀더 나은 생활의 기회를 찾으려는데 있다. 이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 미국사회에의 원만한 적응이 필요한 것이지 무작정의 동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이민들이 그들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는 것은 이민생활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 중의 좋은 것은 이 땅에 심어 미국사회에 새로운 활력소로 보급해야할 책임도 있다.
이민생활이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사회로의 「무작정 동화」가 아니라 자신의 「뿌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선택적 적응」인 것이다.

<한국문화 유지 위해 노력>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국이민들은 자기들의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려고 자녀들에게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한글과 우리노래·한국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또 한국문화를 선양하려는 많은 단체들을 만들어 음악회·무용발표회·학술발표회를 갖고 신문·잡지를 통해 새로운 재미한인문화를 창조해나가고 있다. 짧은 역사를 고려해보면 재미한국이민사회는 미국의 다른 어떤 소수민족보다도 일을 많이 했고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고있고 밝은 앞날을 내다보고 있다.
다음 기회에는 한국이민들의 이와 같은 긍정적 모습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필자>
△1961=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졸업
△1963=도미
△1969=「펜실베니아」대 사회학 박사
△1968=「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및 동 부설한국「커뮤니티」 및 한국학연구소장(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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