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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병기 청문회와 국정원장의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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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정부 2기 개각 대상 8명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어제부터 시작돼 10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첫날 청문회를 치렀던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는 야당이 낙마시키겠다고 벼르는 인물이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마지막 원장인 원세훈씨의 ‘대선개입 댓글의혹 사건’과 박근혜 정부의 첫 원장인 남재준씨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간첩 증거조작 사건’ 등으로 불법성과 무능성, 정치성 논란을 빚어왔다.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직원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져 있다. 국정원은 정보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데다 방대한 예산과 인력도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따라서 국정원장 후보자의 정치적 의무를 지킬 수 있는 도덕성과 국가관, 자질과 능력은 어느 다른 기관보다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 후보자에 대해선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에 관여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당시 한나라당이 대기업에서 823억원을 거둬들여 선거자금으로 사용했으며 이회창 후보의 특보였던 이병기 후보자가 이 가운데 5억원을 이인제 의원 측에 전달한 혐의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은 사실을 파고들었다. 또 1997년 대선 때 안기부 2차장으로서 평양 정권으로 하여금 김대중 후보를 음해하는 작업을 하도록 요청했다는 이른바 ‘북풍 사건’의 책임론을 추궁했다. 이 후보자의 과거 경력에서 정치관여 의혹을 낱낱이 찾아내 부적격자임을 부각하려 했다.

 이 후보자는 이인제 의원 측에 억대의 돈을 전달한 사실에 대해 “제 일생일대의 뼈저린 사건으로 아픈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송구스럽고 사과한다. 국정원장 후보자가 되는 순간 ‘정치 관여’라는 네 글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고 대답했다. 이 후보자는 그러나 차떼기 선거자금 모금 사건엔 관계가 없었고, 북풍 사건은 검찰이 조사했으나 불기소됐다며 무관함을 주장했다. 청문회가 이 후보자의 국가관이나 자질, 능력에 대해서보다는 과거의 행위에 치중된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국정원장의 정치적 중립성이 그만큼 우리 사회의 중심 문제가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회 정보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할지는 불투명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국정원과 국정원장의 정치 관여가 시비의 대상이 되는 불행한 시대는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