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 인사혼란 뺨치는 여야 공천파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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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야 정당은 세월호 참사 때 선두에 나서 정부와 사회를 질타했다. 정부의 부실 대응, ‘관피아’의 무책임, 유병언 그룹의 비도덕성, 선장·선원의 비극적인 이기주의를 규탄했다. 지금도 세월호·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정당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들이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 정당의 후진성은 여러 가지인데 대표적인 게 공천이다. 정치권은 ‘인사가 만사’라며 청와대를 난타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인사에선 정부보다 훨씬 못하다. 원칙도, 질서도, 책임감도 없다. 여야 모두 확립된 제도가 없으니 권력이 개입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공천이 춤을 춘다. 후진적 공천은 수십 년 된 고질인데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극에 달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경선을 약속하고는 여론조사라는 편법을 마구 동원했다. 새 정치를 한다며 창당된 야당에서는 노른자위인 광주에 경선 없이 안철수 사람을 심어 버리기도 했다.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는 여야 지도부가 아예 대놓고 주먹구구식 하향식 공천을 감행하고 있다. 경선은 일부만 있을 뿐 핵심 지역은 모두 지도부의 권력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심각한 건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평택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친이계 임태희 전 의원을 경선에서 배제했다. ‘지역일꾼’이 필요한데 연고가 없는 등 그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를 다시 수원 영통에 공천했다. 평택엔 지역일꾼이 필요하고 영통엔 필요 없나.

 연고가 중요하다는데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지난해 10월 화성 보궐선거에서 별 연고 없이 공천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서울 동작을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영입하려 애를 썼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니 권력을 쥔 친박계가 공천을 마음대로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친박계는 2008년 총선에서 친이계의 ‘자의적인 공천 학살’을 비난했다. 그랬던 이들이 이제는 공천을 무기로 활용한다.

 새정치연합은 서울 동작을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측근인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을 공천했다. 지역위원장을 맡아 출마를 준비해 온 허동준씨는 경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의원 30명은 당의 공천은 명분이 없다며 공천 철회를 요구했다. 새정치연합은 당의 텃밭인 광주 광산을조차 경선 없이 지도부가 공천하겠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사실상 공천이 당선이다. 그렇다면 이는 지도부가 국회의원을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 정치를 주창하면서 창당한 정당이 과거 정당보다 더 독선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공천은 정치 개혁의 핵심이다. 확립된 제도가 없으면 의원이나 정치 지망생이나 모두 공천권을 쥐게 될 당내 권력의 눈치를 봐야 한다.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유력 주자들 사이에서 ‘몸조심’을 하는 의원들의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이다. 국가 개조 작업을 뒷받침해야 할 정당과 국회가 이런 모양새이니 개탄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