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월드컵 참패 한국 축구, 협회부터 개조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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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호 02면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 사회가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사고 수습 과정도 예방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건의 재발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성의를 갖고 투명하게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지도층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비싼 대가를 치르고 터득한 교훈이다.

 그런 점에서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한 대한축구협회의 유임 결정 과정은 국민에게 또 다른 실망감을 안기고 있다. 귀국하는 대표팀에 대한 축구팬들의 ‘엿 세례’에도 불구하고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홍 감독을 유임시켰지만, 형식과 내용은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집행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은 물론 협회의 폐쇄적인 밀실 행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선 허정무 부회장의 ‘나홀로 기자회견’은 “과연 축구협회 측이 진정으로 반성을 하고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은 협회를 책임지고 있는 정몽규 회장이 기자회견장에도 나오지 않고 부회장을 대신 내세운 것에 대해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이영표 전 국가대표팀 선수가 지적한 것처럼 월드컵은 전 세계 210개 FIFA 회원국의 각 축구협회가 4년 동안 준비해 온 것을 보여주고 평가받는 대회다. 이를 위해 각 나라의 축구협회는 대회에 적합한 감독을 선임하고, 감독이 선수들과 협심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보여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대표팀의 실패는 감독 개인을 넘어선 협회 차원의 실패로 규정돼야 할 것이다.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예선 탈락한 이탈리아의 축구협회장이 감독과 함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몽규 회장과 허정무 부회장은 마치 자신들이 대표팀의 책임 여부를 가리는 심판자적인 위치에 서는 듯한 ‘나 몰라 식’의 화법과 태도를 보이고 있어 국민의 빈축까지 사고 있다.

 축구협회는 또, 홍 감독의 유임을 결정함에 있어 국민이나 축구팬들보다 대의원들의 의견을 취합한 것을 마치 국민 전체의 ‘바람’인 것처럼 견강부회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의리 축구’ ‘인맥 축구’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협회 집행부의 결정에 “98년에는 왜…??? 혼자서…”라는 차두리 선수의 페이스북 글이 많은 네티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밀실 행정에 따른 형평성 부재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기회에 축구협회는 제대로 된 축구 행정과 선진 축구의 기반을 세우기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축구협회 집행부가 먼저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는 것부터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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