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응달 중병앓는 도심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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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도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현대화를 치닫는 개발일변도의 정책과 새로운 도시계획에 밀려 경관과 품위를 크게 훼손당하고 심한 경우는 원위치를 옮기는「피난살이」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의 남대문 (국보1호) 보신종각(보물 2호) 독립문(사적32호)을 비롯한 경주·공주등지의 많은 고도문화재들이 이같은 현대화추구에 짓눌려 중병을 앓고있다.
문화재보호문제는 그 법규나 문화계 인사들의 끈질긴 반론도 아랑곳없이 워낙 거센 「개발」의 물결에 여지없이 밀려나버리거나 때로는 주무당국간의 줄다리기가 있어도 문학재쪽이 번번이 참패하고 마는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독립문의 경우를 손꼽을수 있다.
성산대로신설로 독립문의 이전문제가 재기됐을때 문화재위원회를 비롯한 문공부쪽은 거듭「이전불가」를 주장했지만 끝내는 서울시측의 픗대로 해체, 이전되고 말았다.
보신종각도 서울시의 새로운 도시계획으로 원위치를 옮겼다.
국보를 대표하는 남대문은 조만간 주위에 새로 짓게된 16∼20층짜리「빌딩」 숲에 가려버려 초라한 모습이 되게됐다.
60년대이후의 개발「붐」과 함께 제기된 문학재보호문제는 크게 건축규제등의 미비에 따른 경관훼손과 자칫 사적의의를 상실할 우려가 있는 이전문제로 크게 나눌수있다.
법적 규제는 현재로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고도문화재들을 그런대로 보호할만한 조항들을 제법 갖추고있다.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따르면 국보·보물등의 보호지역지정 기준을 『목조및 석조건축물은 각추녀끝이나 돌출점으로부터 사방 20∼1백km로 지정할 수 있게 돼있다(제8조1항).
따라서 모든 국보및 보물은 현재 이같은 기준을 근거한「보호구역」이 설정돼 있고 지방문화재도 지방자치단체가 대체로 보호구역을 지정, 고시해 놓고있다.
사적은 지정기준의 폭이 훨씬 넓어 왕릉이나 고분은 하단으로부터 10∼1천m를, 고궁은 담장으로부터 5∼50m를 각각 보호구역으로 지정할수 있다(제9조 4, 5항).
문화재보호를위한 건축규제도 개정된「건축법시행령」에 따르면 『문화재로부터 사방3백m이내의 건축시설은 건설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돼있다.
이규제를 받는 문화재는 건설부장관과 문공부장관이 협의, 결정할 것이라는 단서를 붙이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건축규제조항은 두부서간의 구체적인 협의가 아직까지 없고 경과규정을 두고있지않아 사실상 효력이 없다. 이 규정의 문화재를 이미 지정된 국보및 보물·사적으로 명문화했거나 협의, 지정했더라면 최근남대문주변의 「빌딩」건축문제같은 것의 규제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또하나 건축법상의 큰맹점은 문화재주변 건물의 고도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옛 목조건물이나 석조물은 기껏해야 몇십m의 높이에 불과한데 주변의 신축건물은 몇백m씩 올라가 문화재 경관을 해치는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건축법상의 「고도제한」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에도 경주 왕릉옆의 건축문제를 경주시장이 건설부 장관에게 질의했다가 아직 3백m이내의 건축규제조항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통고를 받아 그대로 건축허가를 해준 예가 있다는것이다.
문화재의 이전문제는 보호구역지정이나 주변 건축허가등과 함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하도륵 돼있다. 그러나 대학교수와 학자들로 구성된 문화재위의 심의는 행정당국의 강력한 정책추진의 위세에 밀려 번번이 무력하게 물러서고 마는데 문제가있다.
「파리」를 비롯한 「런던」「로마」「워싱턴」동경등 선진외국의 고도 문화재보호는 개발에 앞선「문화재 우선원칙」이 법적으로는 물론, 일반 시민의 의식속에도 철저히 뿌리박혀있다.
현대도시화로부터 고도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도개발법」등의 제정을 통한 철저한 규제와 보호구역의 확대지정. 강력한 권위릍 갖는 「특별심의위원회」등의 설치가 바람직하다는게 문화재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문화재보호는 이같은 물리적 규제에 앞서 정책입안및 집행자의 문화의식과 일반시민의 문화재애호정신이 깊이 뿌리를 내려야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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