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투자 의혹] 위임장까지 위조 … 정치권 커넥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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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철도청(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투자 참여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가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감사원은 16일 전윤철 감사원장의 해외 출국에 앞서 진상조사를 끝낸다는 방침 아래 감사인력을 보강,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사업추진 경위에 대한 조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고, 현재 외압 부분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특히 철도청과 한국철도진흥재단의 중간 간부들이 지난해 9월 합작회사의 민간인 주주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재단 이사장의 위임장을 위조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조지시를 내린 왕영용 철도청 사업개발 본부장과 한국크루드오일(KCO) 허문석 대표의 정치권 연결관계를 찾아내는 데 조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 8일 귀국한 왕 본부장과 민간인 사업자 중 한 사람인 권광진 쿡에너지 대표를 삼청동 감사원 별관으로 불러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감사원은 수사권이 없는 데다 민간인 조사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결국 검찰에 넘겨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무리한 사업 강행 이유 밝혀야=철도재단 간부의 재단 이사장 위임장 위조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당초 정치권과 철도청 수뇌부 간의 연계의혹은 줄어드는 대신 왕 본부장과 허 대표의 정치권 커넥션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왕 본부장이 처음에는 철도청 고위층에 보고를 안 했다고 진술했다가는 다 보고했다고 말하는 등 몇 차례 진술을 번복했다"고 밝혔다. 조사 말미에는 '보고했다'는 쪽으로 진술이 모아졌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왕 본부장은 8일 귀국하면서 "김세호 건교부 차관(당시 철도청장)과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당시 철도청 차장)은 (사업) 내용을 잘 모른다. 일일이 보고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김 차관과 신 사장도 감사원 조사에서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감사원은 또 왕 본부장이 재단 이사장의 위임장을 위조하면서까지 왜 유전사업을 무리하게 서둘렀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철도청장이나 차장 등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경위도 조사대상이다.

러시아 합작사에 지불한 계약금을 반환받는 과정에서 당초 계약 해지 후 러시아 측이 '행정 비용 등을 감안해 계약금의 10% 정도만 빼고 나머지를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이유도 밝힐 방침이다.

◆여전히 풀어야할 정치권 연계 의혹=KCO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철도재단 박모 본부장은 최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계약을 해지할 때, 러시아측에 '정부의 승인을 받지 말라'고 통보할 때 등 중요한 대목마다 왕 본부장이 허문석 대표에게만 구두로 얘기하고 승낙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사업추진과정에서 철도청장과 차장 등 결재 라인은 배제된 채 왕 본부장과 허 대표가 사실상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20일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찾아가 석유개발기금을 지원받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거절당했던 사실까지 감사원 조사에서 밝혀진 상태다.

왕 본부장과 이광재 의원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장인 권영세 의원은 8일 철도공사의 유전사업 관련 회의결과보고서(2004년 9월30일자)를 공개하면서 "회의과정에서 누군가 '이번 사업은 국회 산자위와 산업자원부 주관으로 진행되는 만큼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파악됐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철도청은 건교부 산하여서 국회 산자위와 전혀 무관한데도 이를 거론한 것은 권력형 비리가 개입됐음을 의심할 여지가 충분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왕 본부장과 허 대표가 정치권과 손을 잡고 사업을 추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허 대표가 이광재 의원은 물론 현 정권 실세들과 두루 교류를 해왔다는 사실을 의혹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허 대표는 사업차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있으며 10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감사원은 허씨가 귀국하는 대로 이런 점들에 대해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그러나 감사원 관계자는 "정치권 인사가 철도청 고위층을 배제한 채 실무간부와 손을 잡는 모양새는 생각하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두 사람 외에도 당시 결재 라인과 민간인 사업참여자들의 정치권 연결관계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임봉수.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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