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시민들, 후세인 아들·딸 집 약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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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가 미군에 점령된 지 이틀째인 10일. 시민들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아들 우다이의 저택 등 후세인 정권 핵심 인물들의 집을 습격, 약탈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손수레와 쇼핑카트 등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미 해병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리크 아지즈 부총리, 후세인 대통령의 딸 할라흐, 후세인의 이복형제인 와트반 등의 빌라에 들어가 집기를 들고나왔다고 통신은 전했다.

시민들은 독일 대사관과 프랑스 문화센터에도 난입, 약탈했다. AP통신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반대해온 두 나라 공관이 시민들의 표적이 됐다"고 보도했다.

10일 아침 바그다드 시민들은 귀를 찢는 폭격소리에 잠을 깼다. 시내 북부의 민병대원들을 겨냥해 투하된 미군의 폭탄이 터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그 전날 밤 시민들은 개전 21일 만에 처음으로 '평온한 잠'을 잤다. 미군이 공습을 중지해 2천파운드 벙커 버스터의 굉음도, 집속탄의 난무도 없었던 것이다.

한 시민은 "후세인 24년 철권통치가 막을 내린 첫날밤치고는 허무한 느낌마저 든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점령 이틀째를 맞은 시민들은 대부분 공권력 부재로 인한 치안공백 상황을 불안해하면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몰려드는 환자들로 초만원 상태인 시내 10여개 대형병원은 "물이 떨어져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세계보건기구(WHO) 관계자가 전했다.

바그다드 주재 국제적십자사는 실종됐던 캐나다인 요원이 숨진 채 발견되자 9일 오후 "'카오스(대혼란)'같은 불안상황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다"는 성명을 냈다. 불안해진 시민들은 9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시민들의 불안은 10일 시내외 곳곳에서 후세인을 추종하는 이라크군과 미군 간의 교전이 벌어지면서 증폭됐다. 미 해병 1사단 5연대는 이날 이른 새벽 이라크군과 3시간 동안 격전을 벌인 끝에 티그리스강 북쪽 둑에 위치한 아즈미야 대통령궁 한곳을 장악했다.

해병대는 칼리쉬니코프 소총과 총류탄발사기(RPG) 등으로 무장한 이라크군과 교전을 벌여 대원 한명이 숨지고 최소 20명이 부상했다.

영국 BBC방송은 미군이 북부 바그다드의 티그리스강 근처 이슬람교 사원 근처에서 이라크군과 교전을 벌여 미 해병 한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이 지역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전했다. 미군과 교전한 이라크군 중에는 공화국수비대원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은 "바그다드 시내에 숨은 공화국수비대 특수요원들이 여전히 연합군에 잠재적인 위험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이라크군이 조직적인 지휘체계는 상실한 것 같지만 여전히 십수명씩 민간인 복장을 한 채 저항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성전'을 위해 시리아 등 해외에서 몰려든 4천여 자원병들의 저항이 격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라크에서 20년간 거주한 교민 박상화(서울 피신 중)씨는 "시내를 활보하며 약탈을 자행하는 군중은 상당수가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은 빈민층인 데다 대부분 총을 소지하고 있어 일반 시민들의 불안이 클 것"이라며 "따라서 시민들 대부분은 당분간 집에 틀어박혀 사태를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찬호 기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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