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한 아들에 자수권유|부정은 괴로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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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고교생들 사이에 널리 번지고있는「짤짤이」라는 노름이 끝내 살인을 불렀다. 서울구로동 암「달러」상 부부피습현장 부근에서 사건발생 12일만에 또 일어난 건재상 이상면씨(58)살해사건의 범인은 뜻밖에도 서울S고교 야간부3년 이모(19)·오모(19) 군 등 두 고교생.
범행 하룻만에 이들의 자수로 사건을 해결한 경찰은 아들을 설득해 자수시킨 아버지의 양식에 감격하면서도 어린 학생들의 무분별한 대담성에 놀라는 표정들.
이 사건은 「짤깔이」라는 도박행위가 학교에서 공공연히 성행되고 있는데도 이를 선도하지 못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군과 오군은 12일 하오7시 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친구 최모군(19) 과 「짤짤이」노름을 벌였다. 1시간 남짓한 노름에서 이군 등 2명은 갖고있던 5만5천원을 모두 최군에게 잃었다.
이군이 몽땅 날린 4만3천원은 이날 아침 공납금으로 내기 위해 부모로부터 받은 돈. 이 돈을 잃은 불쾌감과 부모에게 꾸중을 들을 두려움이 이들을 대담하게 했다.
이군은「짤짤이」로 잃은 공납금을 되찾기 위해 오군과 공모, 평소 잘 아는 이씨 집을 털기로 했다. 범행동기는 이처럼 단순했으나 얼굴을 아는 이씨에게 발각될 경우에 대비해 이들은 송곳·각목 등을 준비했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오영환씨(심리학전공)는 이에 대해 『청소년들이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인들의 태도를 본뜬 듯하다』고 풀이했다.
오씨는 이 같은 사회심리가 청소년들에게 비뚤어진 행위를 정당화시켜준다고 했다.
실제 청소년들의 강력범죄는 전체 강력범죄의 40%에 이른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78년10∼12월의 경우 소년범죄는 강도가 전체의 46·4%, 강간이 34·8%를 차지했다.
이군과 오군은 모두 성격이 온순하고 내성적이라고 S고 여교감은 밝혔다.
체격도 작고 출석율도 좋았으며 학업성적도 중간수준을 약간 넘었다.
오군은 2학년 때 전체 2백48명중에서 92등을 했고 이군은 1백59등을 했다.
이들은 모두 부모가 있고 가정도 화목하다.
이군의 부모는 착실한 불교신자이고 오군의 어머니는 「크리스천」이다.
생활형편도 비교적 넉넉한 편. 이군의 아버지 이모씨(54)는 아들 이군의 범행을 알고 이군을 설득, 자수까지 시켰다. 괴로운 부정이었다. 죄에 따른 벌을 받은 다음 새 출발을 시키겠다는 어버이의 마음이었다. 오군은 14일 양심의 가책에 못 이겨 교련담당 김 교사에게 범행을 고백, 김 교사로 하여금 경찰에 신고토록 했다.
수사관들은 누가 봐도 살인을 할 것 같지 않은 이들이 살인을 했다는데 고개를 흔들면서『이것은 가정·학교·사회 모두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이석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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