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집에서는 부부, 가게 가면 남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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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부부창업 20년 차 베테랑인 김영복·정명식 부부. 이들은 업무 영역의 확실한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방장인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홀 서비스 담당인 부인은 유니폼을 차려 입었다. 부인 정씨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부 창업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창업 전문가들에게 “자영업 창업자가 성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주저없이 ‘주인의식’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내 일이라는 생각 없이는 안정적인 서비스와 고객 밀착형 영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가장 큰 고충으로 ‘주인의식’ 없는 종업원과 만만치 않은 인건비’를 든다. 장기 불황으로 인해 수익은 줄어드는데 임대료나 인건비 등 고정비용 지출은 오히려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위해 늘어나는 게 바로 ‘부부창업’이다. 믿을 것은 가족 뿐이라는 인식에다 부부가 직접 운영해 인건비를 줄이고 점포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 더해진 결과다.

실제로 노동집약적인 외식업과 편의점, 수퍼마켓 창업을 주로 택하는 생계형 창업자들은 부부창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상헌 한국창업경영연구소장은 “지난해 연구소 회원사들 중 부부창업자의 수가 전체 창업자의 40%를 차지하는 등 비중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섣불리 뛰어들었다간 실패하기 쉽다고 입을 모은다. ‘잘 되면 두 배 수익, 잘못되면 가정파탄’ 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낳기 쉬워서다. 서울 지하철 교대역 인근에서 치킨 전문점 ‘매드후라이치킨’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복(49)·정명식(45)씨 부부는 20여년간 부부창업의 장·단점, 실패와 성공을 고스란히 겪은 사례다.

전체 창업자의 40%가 부부창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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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차례의 실패 끝에 2012년 9월 66m²(약 20평) 규모의 매장을 인수한 김씨 부부는 사업 2년만에 대박 점포를 만들어냈다. 실적이 부진했던 초창기와 달리 6개월차부터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르더니 현재는 초기 매출의 세 배 규모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김씨는 “숱한 실패 끝에 얻은 노하우가 성공의 발판”이라고 입을 열었다. 치킨집을 시작하기 전 김씨 부부는 정육점과 백반집을 15년간 운영했다. 1998년부터 5년간 방배동에서 정육점을 하다가 대형마트가 입점해 매출이 줄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구제역 파동이 겹치면서 장사를 완전히 접었다. 2003년부터는 서울 서초동에서 백반 배달집을 시작했지만 배달직원 인건비와 숱한 오토바이 사고처리비에 번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러나 김씨 부부가 몸고생과 마음고생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 각자의 업무 영역을 정확히 나눠야 한다는 것과, 분쟁이 없도록 서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백반집을 접고 치킨집 창업을 하면서 이들은 노하우를 차근 차근 적용했다. 주방은 남편 몫, 홀은 아내의 구역으로 나눴고 각각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씩 고용했다. ‘내가 없으면 당신이 해라’ 식으로 영업하지 않고 ‘주방과 홀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운다’는 심정으로 각자 분야를 정한 것이다.

 또 부인인 정씨 명의로 사업자를 등록하고 정씨가 손님과 매출 관리를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위계가 정리됐다. 이전에는 음식 주문이 뒤바뀌거나 손님이 밀리면 다툼이 잦았으나 서열을 정리한 후에는 정씨의 지휘를 따르게 됐고 분쟁이 줄었다. 남편인 김씨는 “부부 창업자들이 싸우고 이혼까지 가는 주된 이유는 서로 지위가 동등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라며 “설령 부부라 할지라도 반드시 사장을 한 사람으로 정하고 현장에서 지위를 존중해야 의견 대립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당일 생긴 감정의 골은 장사가 끝난 당일 대화로 풀어낸다는 것도 숱한 다툼 끝에 얻은 결론이다. 김씨와 정씨는 “초창기에는 메뉴가 바뀌었다고 싸우고, 주메뉴보다 서비스 메뉴를 먼저 내달라고 해서 싸우고, 손이 늦다고 싸우는 등 말도 못하게 다퉜다”며 “이러다가는 장사 망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때부터 부부는 매장이 정리되면 하루 일과를 얘기하면서 서로의 갈등을 해소하기로 했다. 김씨는 “이런저런 손님 얘기를 하면서 당시 상황을 얘기하다보면 마음이 누그러진다”고 말했다. 매일 오후 2~3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3시 퇴근하는 식으로 업무시간을 고정해놓는 것도 책임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물론 부부창업 역시 맛과 서비스가 기본이 돼야 한다.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서 오징어 요리 전문점 ‘오징어와 친구들’을 운영하는 이동명(36)·이수현(33) 부부는 2006년 창업한 후 8년째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매출은 4억원을 넘겼고, 순이익도 2억 원을 올려 구미에서는 장사 잘 되는 집으로 소문날 정도다. 반면 창업비는 130m²(약 40평) 규모 점포비 5000만원을 포함해 8000만원이 들었다.

 이곳은 맛과 서비스의 차별화와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을 줄여서 성공하고 있는 경우다. 힘든 주방 일은 남편이 하고, 고객 관리와 서비스 마인드가 좋은 아내는 홀을 책임지고 영업한다. 임대료도 크게 비싸지 않다. 부부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일이 손에 익어 매출에 비해 주방 일손이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부인 이씨가 개발한 특제 소스 때문에 단골도 늘었다. 내 사업이라는 욕심 덕에 태어난 소스는 고추장과 간장 등 5가지 이상의 재료를 섞어 이씨가 수개월간 연구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신선한 개불, 해삼, 멍게 등도 맛 볼 수 있는데 제철이 되면 항상 다른 경쟁 점포보다 먼저 메뉴를 내놓고 철이 지날 무렵 신선도와 맛이 떨어질라치면 남들보다 먼저 메뉴에서 빼내고 다음 제철까지 기다린다.

일에 치여도 배우자 배려 계속해야

 인건비를 포함한 고정비용이 줄어든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돈벌이에만 치중하다가 가족 파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경기도 수원에서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했던 주모(44)씨 부부는 창업에 나섰다가 문제가 생겼다. 24시간 운영해야 하는 편의점이라 하루 12시간씩 부부가 교대로 근무했고 돈 벌 욕심에 아르바이트 직원도 거의 쓰지 않고 1년 내내 일만 했다. 처음에는 돈이 모이는 것 같아 신났으나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드러났다. 서로 얼굴 마주보고 밥 먹을 시간은커녕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고 그렇게 3년이 지나니 사이가 서먹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마치 남과 같은 사이가 돼 버렸다. 문제의 심각성을 이해한 주씨 부부는 논의 끝에 점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주씨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울산에서 대형 음식점을 운영 했던 김모(48)씨 부부는 창업이 실패하면서 이혼을 택했다. 무리하게 창업했다가 장사가 안 되자 서로 상대방 탓을 하면서 극도의 불신이 생겼다. 게다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단점만 더 보게 돼 이혼까지 가게 됐다. 강병오 FC 창업코리아 대표는 “일에 치여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경우도 발생하기 쉬운데 이럴수록 수시로 상대방을 격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점포 일은 물론이고 가사 일도 서로 분담하고 한 달에 한 두 번 정기적으로 쉬는 날을 정하고 함께 여행을 가는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부부창업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이다. 전문가들은 성공하기 위해 ▶두 사람의 적성에 맞는 업종을 찾고 ▶업무 분담을 명확히 해 책임감을 갖고 ▶육아와 빨래 등 집안일에 대한 분담도 사전에 충분히 합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대표는 “각자 고유한 생활영역이나 적당한 거리를 갖기 원하는 부부는 부부창업에 신중해야 한다”며 “장사가 잘 안될 경우 각각 다른 일을 할 때보다 경제적 타격이 크고 생계는 물론 부부관계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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