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처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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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시속에 공·맹의 이름을 빌어「번비도」운운하는 것은 멋적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닥 향수는 남아 때때로 선현의 교훈을 생각하게 된다.
맹자는『항산이 없으면서도 항심이 있기로는 오직 선비라야될수 있다』고 가르쳤다. 공자는 선
비의 모습을 한결 더 빈한한 가운데서 찾고 있다.
『일단사, 일표음, 불개기악.』
밥 한그룻, 물 한바가지로도 즐거움이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는 바로 안회를 그런 선비
로 지목했었다.
세상을 냉수 한 대접 마시는 담담한 심정으로 살아가며 오로지 학문에만 집착하던 옛선비는 오
늘의 감각으로는 차라리 무능과 나태의 주인공으로도 생각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그 누구도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설렘니티」(장엄)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선비앞에 세인이 머리를 숙이
는 것도 그 근엄한 풍도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필경 이런 경지에 이르면 선비자신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태는 바뀌어 오늘의 사람들은 빈한을 무슨 악덕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청빈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교사의 이직율은 평균 7%, 특히 실업교사의 경우엔 41.2%에 달했다.
1백명중 8명 또는 41명이 그 직을 버린셈이다. 따라서 교사의 부족은 만성적인 현상이 되어버렸
다.
왜 그랬을까. 상당한 이유는 낮은 처우에 있을 것이다. 사실 가난한 교사들에게 청빈을 예찬하
는 따위의 말은 오늘의 세풍으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와텐버그」라는 교육학자는 교사의 역할을 장황하게 규정한 일이 있었다.
사회의 대표자, 판단자, 지식의 자원, 학습의 조력자, 심판자, 훈육자, 학생들의 동일화대상, 불
안제거자, 자아옹호자등…. 그밖에도 부모의 대용자로서의 역할도있다.
바로 이들에게 직업적인 사명감과 의욕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일깨
워주는 것과 같다. 적어도 체면을 차리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대우는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요즘우리사회의 일각에서 교사의대우를 걱정하는논의가 빈번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
다. 관계당국도 내년부터 교직수당제를 시행할 구상을 갖고 있는가 보다.
오늘의 교사들은 우선 그 사기부터 회복해야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의 개선방안에 결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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