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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원래 다 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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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민관
연세대 정외과 4학년

“군대는 원래 다 그래.” 선배의 대답은 이 한마디였다. 일병 휴가 날, 군대에서 당한 가혹행위를 예비역 선배에게 구구절절 하소연했다. 그러나 선배는 군대니까 당연하다는 심드렁한 반응뿐이었다.

 예비역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군대 부조리의 꽃(?)은 단연 가혹행위라는 걸. 군대의 가혹행위는 계급구조 속에서 피어난다. 군대의 질서는 ‘까라면 까라’ 식의 상명하복을 통해 유지된다. 상(上)과 하(下)를 구분짓는 건 계급이다. 물론 전시를 대비하는 군대에서 철저한 위계질서는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뭐든 지나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군대 용어를 빌리자면 가혹행위는 계급을 ‘타고 내려온다’.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이 구조에서 기인한다. 가혹행위의 피해자인 하위계급 병사들도 시간이 지나면 상위계급이 된다. 피해자는 어느덧 가해자의 위치에 선다. ‘나도 당했는데 너도 당해 봐라’라는 생각에 가혹행위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반복된다. 반복 속에서 가혹행위는 관습처럼 굳어진다. 관습은 가치판단의 범주를 넘어선다. 가혹행위는 죄책감 없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가혹행위로 인한 사건사고는 매년 발생한다. 하지만 군 당국의 대처는 수박 겉핥기에 머무른다. 처벌 대상은 직접적 가해자에게 국한된다. 부대 지휘관은 ‘총대’를 메고 군복을 벗는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된다. 이런 식으론 가혹행위가 근절될 수 없다. 사건의 가해자는 ‘가혹행위 문화’를 공유한 부대원 전체다. 현장을 목도하고도 모른 척한 방관자들, 가혹행위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무시해 버린 부대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사고인 것이다. 부대원들의 가혹행위에 대한 ‘무비판성’이 쌓이고 쌓여 벌어진 일이다. 이 의식적 부분을 건드려 주어야 가혹행위는 근절될 수 있다.

 20년 전, 르완다에선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잔인한 내전이 벌어졌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가차차(Gacaca)’다. 가차차란 마을 주민들 모두가 풀밭에 모여 분쟁을 해결한다는 의미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한 명씩 나와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고백의 과정에서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폭력을 가하는 행동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고백은 진심어린 뉘우침과 화해를 가능하게 했다.

 가혹행위로 사고가 발생한 부대부터 가차차(Gacaca)를 도입하면 어떨까. 무비판적으로 수용돼온 가혹행위의 부조리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군대문화를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군대는 원래 다 그래’라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김민관 연세대 정외과 4학년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