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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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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예전엔 내외주점이란 게 있었다.
내외가 같이 차리고, 같이 일하는 술집이 아니다. 접대부가 없는 일종의 금녀의 술집이다.
「내외」란 원래 부부를 뜻한다. 곧「내」는 아내요「외」는 남편이다.「내외간」이라면 부부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내외한다」면 여성이 외간 남자와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옛 수신책인『예기』의 내외 편에서 옛 여성에게 가르친 것은 철저하게 내외하는「내외지간」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공자가 편찬한『시경』조차 읽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종 때의 학자 이덕무는『부의』에서 부녀자가 시를 읽으면 자연 마음이 동하여 바람이 나게 된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내외지간, 곧 남녀의 사이를 일깨워주는 모든 것이 부녀자에게는 「터부」였다.
혼전의 소녀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따라서『여헌』『내훈』『여사서』또는『삼강행실도』등 그 어느 교과서나 이성을 느끼는 것 자체가 다시없는 죄악이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모든 게 그저 어깨 넘어 공부일 뿐이었다. 시집가는 딸에게 어머니가 가르치는 것도 성에 관한 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걸 입밖에 낸다는 것부터가 망측스러운 일로 여겼었다.
「그런 것」은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써 배우려는 것부터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사정은 그랬던 3, 4백년전의 옛날과 지금도 별로 다를 게 없다. 그저『자연스럽게 배워지는 것』을 오늘의 어린이들이 선정적인 영화·광고·저속한 대중소설들을 통해 부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는 게 다를 뿐이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뒤늦게나마 이른바 순결교육이 국민 학교에서 실시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우선 서구 어린이들의 순결교육을 위한 교과서를 우리네 어린이들에게 그대로 가르쳐도 좋을지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내외하는 부모들의 사회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그것은 전인격적 교육의 일부라야 한다. 그런 뜻에서 순결교육은 학교에만 맡겨 둘 수도 없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골든·아워」인 저녁7시부터「텔리비전」으로 성교육 「프로」를 방영하고 있다. 가정과 직결되고 가정적인 대화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는 순결교육의「이니셔티브」를 부모가 잡도록 마련되어있다.
『양친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하고 애정을 적당히 육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아이들은 성의 기본적인「이미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말한 미국의 순결교육자「스포크」박사의 말을 잘 음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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