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의 가능성 제시|『갈 수 없는 나라』를 읽고 이선영<연세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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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조해일씨는『갈 수 없는 나라』에서 한국사회의 타락상을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진술하고 있다. 그는 이 타락사회를 단순히 증언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를 추구하고 있다. 재벌의 악폐와 성도덕의 문란으로 지극히 타락한 사회, 그 사회에 있어서의 정의와 사랑의 진실한 삶을 논리정연한 이야기로 추구, 전개시켜 놓고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정연한 논리는 추리소설의 구성에 의해서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기도 한다.

<수수께끼의 사건과 합리적 수사>라는 추리소설의 본질적 구성에 따라 이 소설 역시 그 서두부터 우리를 미궁으로 몰아넣은 다음 그 수수께끼를 쉽게 풀 수 없도록「트릭」을 만들고 있다.
5명의 재벌2새들, 이른방<오인방>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인물에 의해서 한사람 한사람 살해되어 간다. 「호텔」「나이트·클럽」에서 승용차 안에서,「풀」에서, 병실에서, 그리고 별장에서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작자의「트릭」에 의해서 그 살인자의 정체와 동기는 용이하게 밝혀지지 않으며, 따라서 독자의 호기심은 높아지게 마련이다.
경찰의 수사는 이 미궁의 사건과 적절한 조화를 유지하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핵심적 상황(결론)을 향해서 서서히 진행되어 간다.
그리하여 결국 독자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이 일련의 살인사건 이전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살인자는 <오인방>에 의해 희생된 여자의 애인이기 때문에 원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으며, 따라서 <오인방> 또한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추리적이고 반전적인 결론 제시의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유희적 쾌감을 맛보게도 한다.
그러나 이 장편에서 우리가 좀더 자세히 검토해야할 것은 주인공 배수빈의 살인동기다. 소년시절에는 불우한 가운데서도 매우 성실 근면하던 배수빈이 그처럼 끔찍한 연쇄살인을 감행하게된 것은 <동화>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8년전 수빈과 신애는 17, 16세의 소년·소녀로서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신애는 재벌 2세들인 그 <오인방>의 <사냥>의 희생물로 끌려가 무참히 윤간을 당했기 때문에 호수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이다. 이 사실을 확인한 수빈이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동화를 그리워하며, 오랜 신고 끝에 애인의 원수를(우연히 한사람을 제외하고는)모두 자기 손으로 처치하고만 것이다.
부의 악용이 우리 사회의 타락을 가속화하는 때에 이러한 주제의 강조는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겠거니와, 가해자와 피해자, 추잡함과 순결함,「섹스」와「에로스」, 정의와 불의…와 같은 대립적 개념을 분명히 제시한 점도 호감이 간다.
다만 이러한 작자의 통찰력과 감수성이 현실의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유보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소설이 이 시대의 본질적인 문제를 추리소설로 다루는데 한길을 열어 놓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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