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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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오! 나의 암사자, 나의 검은 미녀, 나의 흑녀, 나의 나녀!
아아! 좁은 울 속에 길들지 않은 표범처럼 그대 내 가슴 고동치게 한지 그 몇 차례였던가!
나는 이론에서「살롱」에서 궤변에서 기교에서 구실에서 타산적 증악에서 인간화된 살육에서 해방시키는 밤!
나의 온갖 모순, 그리고 모든 모순을 너의「흑인성」의 원초적 합일 속에서 용해시키는 밤….』
이렇게「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세네갈」의 시인대통령「상고르」는 「노벨」문학상의 만년 후보생이다.
1930년대 초에「프랑스」는『흰「아프리카」인』을 만들려는 동화정책을 썼다. 여기에 반대하여「파리」유학중인 흑인 학생들은 흑인복권운동을 벌였다.
이때의「슬로건」은「네그리듀드」(Negritude=negroness 흑인성)이었으며, 기수가「상고르」였다.
『나 여기 땅에 되돌아왔다. 어린시절의 황국의 그 빛 찬란하여라 그리하여 이는 내 고난의 끝이로다』-. 이렇게 「샤카」에서 노래한 「상고르」는 「아프리카」인들로 하여금 그 흑인성의 존엄을 자각케 하였다.
사상가로서의 그가 본 「서구」란 물질과 개인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관의 세계였다.
그런 「서구의 몰락」을 30년대의 「파리」에서 뼈저리게 느낀 다정다감한 젊은 시인「상고르」가 스스로의 「흑인성」을 자랑스럽게 긍정하기에 이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알몸의 여인, 검은 여인, 나는 노래한다. 사라져 가는 너의 아름다움. 영원 속에 내가 묻히는 이 형체를- 질투 어린 운명의 신이 생명의 뿌리를 키우기 위해 너를 재로 만들기 전에….』
그러나 그는 편협스런 민족주의자도 인종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몰락해 가는 백인의 물질문명을 생명력이 요동하는 흑인성으로 소생시키기를 꿈꿨을 뿐이었다.
『이제 내 가슴은 태양아래 눈처럼 녹아듭니다.
나는 잊습니다.
총알을 쏘아대는 하얀 손들, 왕국을 무너뜨린 하얀 손들, 노예를 매질한 손들… 나를 고독과 증악으로 내맡긴 자신 넘친 손들… 나는 나의 저장된 증악을 꺼내지 안겠습니다.』
『「파리」에 내리는 눈』이란 제목의 이 시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한때 흑인에게 매질하고 착취한 백인에게 화해와 관용의 손길을 뻗치는 평화주의자의 모습이다.
어제「세네갈」공화국의「상고르」대통령이 우리의 국빈으로서 내한했다. 『…무장된 평화, 압박 밑의 평화, 평등 없는 우애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만인이 형제 되기를 원해 왔노라.』
이런「샤카」의 시인의「메시지」나 그를 반기는 우리의 소망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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