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라크戰과 우리 예비전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최근 매스컴에서 미.영 연합군과 이라크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빠짐없이 생중계해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대목은 긴급 소집된 미국의 예비군과 이라크의 민병대(예비군)다.

특히 이라크전에 참전한 미군의 약 40% 이상이 예비군임에도 작전에 큰 차질없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보급로를 게릴라전으로 위협해 연합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라크 민병대의 활동도 녹록지 않다.

*** 참전 미군의 40%가 예비군

이라크전에서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미국의 예비군과 이라크 민병대의 작전활동을 접하면서 우리의 예비군을 짚어보게 된다. 북한에는 우리의 예비군에 해당하는 7백여만명의 노동적위대와 교도대가 건재하고,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만큼 우리의 예비군은 현역 못지않게 중요한 전력이 아닐 수 없다.

예비군은 1.21사태를 계기로 1968년 창설된 후 89회에 걸쳐 크고 작은 작전에 참가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거창한 이념과 의지를 갖고 출발한 것들이 통상 그렇듯 너무 오래 평화(?)를 누린 탓인지 요즘 예비군은 "껍데기 뿐"이라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그 책임은 물론 군과 행정기관에 있지만 국민의 해이해진 안보의식도 한몫 했다고 본다. 국방비가 세계 평균 군사비 부담률(GDP 대비 3.8%)에 못미치는 2.7%인 탓에 예비군의 예산은 고작 국방비의 0.3%에 불과하다.

겨우 3백8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3백여만명이 넘는 예비군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러니 어찌 예비군 제도에 많은 잡음이 들려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비군 동원훈련은 일률적으로 날짜를 정해 놓고 소집해 훈련하는 방식이어서 이를 위반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예비군의 복무기간과 훈련기간의 단축은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이 돼 창설 당시 5박6일이었던 동원훈련 기간은 3박4일로 줄어들었다. 올해 2박3일로 줄 것이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예비군들 사이에서 "훈련다운 훈련 한번 해보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비해 미국의 예비군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주말을 이용해 연간 12주 훈련을 받거나 연간 30일 이내 현역부대에 입소해 훈련을 받고 있다. 훈련 일정을 신축성있게 운용하는 미국의 다양한 훈련제도가 국민의 참여를 높일 것은 당연하다.

예비군들의 장비와 물자도 열악하다. 특히 장비는 카빈소총과 LMG 기관총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됐던 것들 일색이다. 북한의 화학무기 위협이 상존함에도 불구하고 예비군들에게 지급되는 방독면과 철모는 4명당 1개꼴이다.

훈련에 동원된 예비군들에게 교통비도 안되는 2천5백원을 점심값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는 형편이니 제대로 된 예비군 훈련을 기대할 수 있겠나.

예비군 관리조직도 왜소하기 그지 없다. 국방부에 동원국, 육군에 동원처만 두고 있을 뿐이다. 또 군은 예비군 훈련만 담당하고,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직장장에게 위임해 '훈련'과 '조직관리'의 책임이 이원화됐다.

이에 비해 미국은 국방부에 예비군 담당 차관, 각 군에 예비군 차관보를 두어 예비군 관리를 총괄한다. 또 미국 본토에 군사령부급의 연방예비군총사령부와 각 군에 예비군사령부를 두고 있으며, 별도의 기능사령부에서 이들을 지원한다.

거기에다 미국은 평시 예비군을 지원제로 운용하다가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면 곧바로 징집제로 전환한다. 따라서 예비군은 언제든지 현역으로 전환할 수 있다.

*** 껍데기뿐인 예비군제 개혁해야

이제 우리는 누구도 유사시 예비군의 전력화를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적 부담이 큰 현역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예비군 개혁 프로그램'을 서둘러 마련해 쉬운 것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예비군과 이라크의 민병대는 예비군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명실상부한 우리 군의 예비 전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과감히 조직을 정비하고, 훈련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반전의 편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프랑스도 특별법을 제정해 예비군의 제도 개혁에 나서고 있다. 미국과 이라크.프랑스의 사례를 거울삼아 우리도 예비군 개혁에 나서야 할 때다. 자주국방은 말이나 구호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원영 국방연구원 연구위원,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