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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 당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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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중략)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정호승(1950~ ) ‘고래를 위하여’ 중에서

마흔 즈음에 처음 읽은 이 시가 내 마음을 툭 쳤다. 내 가슴속에 키워온 고래 한 마리가 꼬리지느러미로 힘차게 파도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쉰을 훌쩍 넘긴 지금 다시 읽어도 마음 한구석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시다. 가수 안치환이 이 시를 노랫말 삼아 만든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품은 고래가 요동친다.

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저마다 마음속에 고래가 뛰어놀고 있음을 보았다. 청년기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굴레 탓에 더러 위축되어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웅크리고 있는 고래도 보았다. 긴급조치 세대인 나도 한때 좌절한 경험이 있다. 시련의 연속이었으나 지금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의연한 마음은 그대로다. 불의의 시대를 깨부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평등사회의 꿈을 키운 끝에 오늘 나의 자리를 찾았다. 이 땅의 청년들이 고래처럼 청청한 기상, 호연지기를 품고 살아가길 바라면서 이 시를 읽는다. 고래가 있어야 바다이듯, 청년들의 기상이 살아있어야 나라이다. 고래가 별빛과 소통하듯, 우리 청년과 학생들이 세계와 대화하고 우주와 소통하는 기상을 키울 수 있게 다시금 고래를 품는다.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 당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