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약한 출입국관리” 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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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은 멀고도 가까웠다. 가짜 미군과 군속가족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신분증 위조단 일당의 범행은 의외로 허술한 출입국관리의 맹점을 드러냈다.
이들의 범행이 처음 잡히기는 지난 2월-. 미국의 신문들이 불법입국한 한국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미군에 무더기 입대. 시민권을 얻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였다.
전부터도 한남동 일대에서는 『20만∼30만원만 주면 PX출입증을 얻어낼 수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긴 했지만 미국신문의 보도로 미국 내에서 여론이 일고 문제가 되자 한국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던 것.
그러나 별 단서를 잡지 못하던 중 지난 3월 14일 가짜 미군신분증으로 미국에 입국했다 귀국하려던 유정웅씨(36·도봉구 미아동 56의17)가 뜻밖에도 자수를 해옴으로써 일망타진의 개가를 올리게 됐다.
유씨는 작년 10월, 조직의 일원인 최정임·한기낙씨에게 5백만원을 주고 가짜 미군신분증과 휴가증을 얻어 김포공항을 통과, 무사히 미국에 입국했으나 미국 생활에 회의를 느껴 4개월만에 귀국하려했다.
그러나 김포공항에서 미군신분증을 가지고 있는데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것을 수상히 여겨 입국을 불허하자 『서류를 보완해 오겠다』며 「하와이」까지 돌아갔으며 그곳 생활에 불안을 느끼자 서울지검 성북지청 이원성 검사에게 장거리 전화로 귀국해 수사에 협조할 뜻을 밝히고 28일 김포공항에 송환됐다.
주범 이병덕(48)과 알선책 한기낙(34)·최정임(44)부부는 10여년 전부터 미제물건 장사관계로 서로 잘 아는 사이. 이는 관세법 위반으로 2차례 옥살이를 한 경력이 있으며 한은 미군 군속으로 미8군에 근무하다 5년 전 오산비행장에서 미군용기를 타고 불법출국, 미군에 자원입대 했다가 제대와 함께 시민권을 얻어내는 묘수를 써서 지난3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2중 국적 소유자.
이들이 처음에 범행을 시도하기는 작년 7월.
한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가 총 책임을 맡아 위조한 신분증읕 병역기피자나 범법자 등 합법출국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미군인신분증 (ID 「카드」)과 휴가증을 1인당 2백∼5백만원을 받고 팔기로 했다.
주범 이는 지난 3월초 출국해버린 미국인 주범 「잭슨」 (흑인)을 포섭, 50「달러」를 주고 신분증 등 원본을 입수한 뒤 위조책 김용운(33·중구 을지로4가 대광인쇄 대표)을 시켜 도안식자·사진제판, 각 과정을 다른 장소에서 나누어 작업, 가짜 신분증을 만들었다. 마지막에 과거 미8군에서 인사행정 사무를 보았던 「잭슨」이 필요사항을 기재하고 가짜 「사인」을 해놓으면 진짜와 거의 구별이 안될 정도로 감쪽같은 신분증이 만들어진다는 것.
이들이 그동안 위조한 신분증이 6천장, 「디펜드·카드」 (군속 및 군인가족신분증)가 1천5백장, LOA「카드」 (PX물품구입권)가 1천∼2천장, 휴가증은 그때그때 발행해왔다.
2중 국적을 갖고 있는 한은 가짜신분증을 판 뒤 미리 미국에 건너가 있다가 출국자가 미국에 도착하면 공항에서 가짜신분증을 회수, 찢어버리는 방법으로 발각을 막았고 유씨같이 재 귀국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위조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다. <문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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