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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로 향하는 마음 이광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나의 방 한쪽 벽에는 액자에 든 흑백의 관음보살사진이 걸려있다. 그것은 약20년 전 경주여행길에 옛 박물관 앞 토산품 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손에 넣은 것인데 세로 50여㎝·가로20여㎝ 정도 크기의 입체적으로 잘 찍어진 사진이다. 그때 30대 가량의 인상이 좋은 여주인이 일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자기 집에 남은 마지막 한 장이라고 말하며 넘겨주던 기억이 어제와 같다.
그동안 이사도 몇 번하였으나 그 관음 보살상은 언제나 변함없이 나의 방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바른 손에 살며시 보기를 받들고 자브름하게 감으신 눈, 부드럽게 드리운 천의 속에 천녀인듯 감싸인 청려한 몸매. 그 관음보살의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녀가 경주 토함산의 산봉 가까이 그 석굴암 바위속에서 하늘과 산, 그리고 동해의 경기를 머금고 태어난 것만 같다.
학생시대의 경주 초행길에서 석굴암 내부 본존 석가여래를 모실 듯, 뒷면 오른편 천부상과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있는 그 보살과 처음 마주하였을 때의 감동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관음보살이 나의 마음속에서 나무처럼 자라고 그러고 하나의 의미(의미)가 된 것은 많은 세월 속에서였다.
나는 한가한 시간이면 화집을 들여다보기를 즐긴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유럽」의 그림들이다. 「그리스」의 조각작품과 「고딕」사원, 또 때로는 「르네상스」나 현대의 회화이기도하다.
그 것들을 볼 때마다 나는 많은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그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 앞에서도 메워지지 않는 심성의 한구석. 그럴 때 나의 시선은 어느 덧 벽에 걸린 그 관음상에 향한다.
지난날 「유럽」 의 「고딕」사원 순례길에서, 또 그 많은 미술관들의 작품 앞에서, 내가 느낀 것은 나 자신이 미의 세계에 있어서도 이교도라는 생각이었다. 그 때마다 나의 마음은 관음상과 경주로 향하였다.
20년 가까이 나의 방을 지켜온 그 관음상에 비하면 방에 놓여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한두 폭의 서화·.자기나 책들까지도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한갖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없지 않다. 또 때로는 이 관음상과 일찍이 만났더라면 나는 과연 서양사를 전공할 생각을 하였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2년 전에 찾아 간 경주와 불국사는 많이 변한 것 같이 보였다. 경주에 다녀왔다는 친지를 만날 때면 많은 것을 물어 본다. 더 나쁘게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이다. 슬기로운 겨레의 천년고도. 자연처럼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낄 수 없을까.
경주는 저 관음상의 세계처럼 나의 심성의 고향인가. 마음은 항시 그곳을 향하면서도 좀처럼 찾아갈 수가 없다.

<충남대교수· 서양사· 29년 함흥출신·고려대 대학원졸업·서독 「하이델베르크」대 연구·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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