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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2401)|극단 「신협」(제61화)|여우들의 결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연극 『처용의 노래』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윤이상은 당시·부산 모고교의 음악선생으로 있던 무명작곡가였다.
유치진선생과 동향인 통영출신으로 유선생의 추천으로 음악을 맡게됐다. 그런데 완성된 음악을 물어보니 전혀 연극과 어울리지 않는 작곡이었다. 흡사 축문을 읽어내려가는 듯한 단조로운「멜러디」였다. 과거『원술낭』의 환상장면에 나운영이 작곡을 해 이 연극 성공의 결정적 역할을 했는데 이번은 그 반대로 춤과 노래가 많아 곁들어진 이 연극을 망쳐버렸다.
윤이상은 연극을 이해하고 작곡을 한것이 아니고 그냥 자기유의 음악을 만든 이상이었다.
그런데 서울 수복뒤 문총회의때 윤이상이 참석했었다. 그 자리엔 당시 공보처장관이던 갈홍기씨도 참석했는데 회의도중 무엇때문인지 갑자기 윤이상이 갈장관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공격해, 그 의의에 참석한 문화인들을 깜짝 놀라게했다.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저렇게 교양 없고 몰상식할 수 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동석했던 유선생도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하고 후회했다.
『처객의 노래』에선 금속과 윤인자가 주연을 맡았었는데 두사람 모두 극중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그런데 그 즈음 극단 연기인 사이엔 조그마한 변화가 있었다. 비밀스런 「로맨스」의 싹이 튼 것이다. 맨처음 결혼에 성공한 「커플」이 민구·윤인자였다. 민구는 당시 무대감독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에 윤인자와 사랑을 나누게 되어 결실을 보게된 것이다.
그들이 불쑥 『우리 결혼하게 되었읍니다』하고 발표할 때까지 「신협」의 아무도 그들의 사랑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들은 부산에서 한 극장의 분장실을 빌어 식을 올렸다. 조촐한 결혼식이었지만 단원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그들을 축복했었다. 식이 끝난 뒤엔 잔뜩 마련했던 떡으로 푸짐한 잔치를 치렀다.
절에 가 스님이 되겠다던 민구가 예쁜 여배우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된 셈이다. 그런데「신협」의 내규는 단원끼리 연애는 자유이지만 일단 결혼하면 어느 한쪽이 극단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윤인자는 『처용의 노래』를 끝으로 「신협」을 떠나고 말았다.
윤인자의 「로맨스」뒤를 이은 주인공이 황정순이었다. 황정순의 상대는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던 이영복이었다. 이영복은 대구가 고향으로 대구지방에선 꽤 알려진 명문출신의 귀공자였다.
당시 「신협」 여배우들은 마로 망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루는 황정순이 아파서 이영복이 왕진을 오게 됐다.
그때 황정순을 본 이영복이 황정순에게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게 됐던 것이다.
그런네 이영복은 그때 이미 기혼자로 자녀까지 두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과는 불화로 별거, 이혼을 서두르고 있던 때였다.
황정순을 본 이영복은 그만 황정순에게 너무 깊이 빠져 병원까지 걷어치우고 말았다. 그리고는 극단에서 일을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영복에게 어울리는 마땅한 일감이 있을리 만무. 결국 궁리중이다가 극단이 극장 관객들에게 나누어주는 연극「프로그램」을 자신이 자비로 제작,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일은 극단 쪽에서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연극 「프로그램」을 극단에서 따로 제작비를 들여 무료로 나누어주었는데, 이영복이 맡겠다니 극단으로선 그만큼 제작비를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복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은 순전히 극단과 함께 행동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아뭏든 이영복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고 그것을 핑계로 극단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그러나 극단 단원이 된 것은 아니니까 두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극단을 떠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그를 「닥터」이로 불렀다. 사랑에 빠진 「닥터」이는 부지런히 「프로그램」을 만들어 극장 입구에서 팔았다. 그 뒤 두 사람은 서울에서 결혼, 황정순의 헌신적인 희생과 사랑으로 행복된 생활을 했는데, 「닥터」이는 2년전 작고했다.
같은 단원이었던 최무룡과 강효실의 사랑도 이즈음에 무르익고 있었다.
피난시절에도 생활은 있었고, 그 생활속에 연극의 정열과 사랑의 낭만 행각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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