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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는 해외교육 리포트] (17) 폴란드 NR.336 루데고 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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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희씨와 두 딸 지아·지우양. 

江南通新이 ‘엄마(아빠)가 쓰는 해외 교육 리포트’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자녀를 키우는 한국 엄마(아빠)들이 직접 그 나라 교육 시스템과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 드립니다.

폴란드 루데고 초등학교는 성적보다 질서 지키기와 체육활동을 더 강조한다. (1) 학교 1층에서 겉옷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은 후 교실로 향하는 학생들. (2) 루데고 학생들이 ‘건강한 식습관 만들기 캠페인’에 참여해 발표하고 있다. (3)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학교 홈페이지·조민희씨]

폴란드와 대한민국.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 있어 7000km 넘게 떨어져 있는 이 두 나라는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 역사적으론 외세 침략의 상처다. 한국은 일본에, 폴란드는 러시아·독일 등으로부터 침략당했다. 이런 비극이 또 다른 공통점을 낳았을까. 두 나라 모두 교육열이 높다. 폴란드 성인(25~64세) 89%가 고교 졸업자다. 이는 한국(81%)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4%)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특히 최근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 급격한 상승세를 타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2009년 순위에선 읽기·수학·과학 모두 10위권 밖이었지만 2012년 읽기 6위, 수학 8위, 과학 5위를 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두 자녀를 키우는 조민희씨에게 폴란드 교육 얘기를 들어봤다.

바르샤바에 온지 3년이 돼간다. 2010년 인터넷방송국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폴란드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오랜 꿈인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 들어가겠다는 거다. 처음엔 눈앞이 캄캄했다. 대만에서 유학한 적이 있어 해외 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아이교육이 문제였다. 당시 첫째 지아는 초등학교 1학년, 둘째 지우는 5살이었다. 결국 바르샤바행을 택한 건 폴란드가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우리는 ‘코미시 에듀카이 나로도베이’에 산다. 학원이 많아 바르샤바에서 ‘교육의 거리’로 불린다. 하지만 대치동 학원가를 떠올리면 안된다. 수학 등 내신이나 입시용 교과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페인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 등 주로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기 때문이다. 또 ‘교육의 거리’라지만 의외로 학원이 밀집해있지는 않다. 지하철 역 한곳에 학원 2~3개가 있는 게 전부다. 폴란드에서는 같은 지역에서 동일 업종은 영업을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탓이다.

처음에 국제학교와 사립학교·공립학교 등을 두루 알아봤다.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낼까 하다 한동안 계속 폴란드에서 살 계획이라 현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립학교를 보내기로 했다. 집에서 5분 거리의 사립학교는 등록금이 1년에 1000만원 정도로 비쌌다. 결국 걸어서 20분 거리의 NR.336 루데고 공립초등학교에 보내기로 했다. 돌이켜볼수록 옳은 결정이었다. 학교 싫어하던 아이가 아플 때도 학교 가겠다고 떼 쓰고,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루데고 초등학교 전경

“예습 해오지 마라”

지아는 한국에서 학교 가는 걸 싫어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시험을 못 본 후 교사에게 꾸지람 들은 게 결정적 계기였다. 갓 입학한 아이가 한글을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당시 담임교사는 무조건 혼내기만 했다. 체벌이 금지됐다는데 그 교사는 손바닥을 때리고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고 했고, 그런 아이를 겨우 달래서 등교시키면 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니 폴란드에 와서도 걱정이 앞섰다. 자기 나라 담임교사와도 소통이 안되는데 외국인으로 학교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등교 첫날 모든 게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 학교에 가서 전학 수속을 밟은 뒤 교실로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을 때 본 풍경은 TV드라마 속과 똑같았다. 아이들은 모두 담임교사와 포옹하고 볼에 뽀뽀한 뒤 자기 자리에 앉았다. 교사 눈에는 애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일일이 교사와 스킨십을 한 후 교실에서 나왔다. 그런 교사에게 배우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지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가 재미있다”고 했다. 감기에 걸려 결석이라도 하면 “빨리 나아서 학교 가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다.

내가 겪은 바로는, 폴란드 교사는 모든 학생이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학기말 평가에서 이런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 폴란드 초등학교는 매 학기말 한 반 부모를 전부 모아 자녀에 대한 평가를 들려준다. 학교생활기록부를 교사가 직접 읽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 엄마라면 다른 부모와 함께 자기 아이 평가를 듣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폴란드에서는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국어 90점, 수학 80점’ 식의 단순한 학력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항상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아이”라는 식으로 장점을 얘기한다. A4 용지 가득 적힌 교사 의견엔 나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보며 폴란드 교사들은 학생 개개인의 부족한 점이나 단점보다 장점과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북돋워 준다고 생각했다.

폴란드 교육의 장점은 이처럼 좋은 교사에서 출발한다. 훌륭한 교사는 아이의 인성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배우는 즐거움까지 절로 발견하게 한다.

처음에 지아는 방과 후에 쉴 시간이 별로 없었다. 폴란드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업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예습·복습 밖에 없다는 생각에 내가 공부를 시켰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그날 배운 내용을 다시 훑고, 다음날 배울 내용을 미리 살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오더니 “선생님이 예습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잘하는 지아를 보고 교사는 “예습을 하면 수업시간에 새 내용을 배우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며 “교사 역할이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돕는 것이니,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했단다. 그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교사가 “학원에서 다 배우지 않았느냐”며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는데, 이곳은 달랐다.

학기 말이면 담임교사에게 꽃 한송이를 선물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학교는 예의바른 시민 키우는 출발점

수업 외에도 폴란드와 한국 학교가 다른 점은 많다. 대표적인 게 질서다. 성적을 매길 때 주요과목보다 행동발달점수를 더 중요하게 할 정도다. 폴란드어·영어·수학은 좀 못해도 괜찮지만, 행동발달점수가 낮으면 유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성적이 우수하면 태도가 좀 불량해도 교사가 잘 혼내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폴란드는 정반대다. 그러니 아이들 머릿속에 질서 잘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걸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교실에서 뛰거나 큰 소리를 내면 교사는 몇 번 주의를 준 후 “행동발달점수 마이너스(-)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교사가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체벌하는 일은 절대 없다. 항상 조용히 설명하고 설득할 뿐이다.

사실 예의를 중시하는 건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폴란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예의를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친다고 보면 된다. 예컨대 폴란드에서는 실내에서 겉옷 입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보는데, 학교에서부터 이를 가르치는 거다. 모든 학생은 등교하면 교실에 가기 전 1층에 있는 신발장에서 실내화로 갈아 신고 겉옷을 벗은 후 각자 교실로 이동한다.

또 학교 안에서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뛰어 다니는 사람이 없다. 공원에서 운동복 입고 조깅하는 사람 외에는 다 ‘천천히’ 걸어 다닌다. 폴란드에 간 지 얼마 안됐을 때 급한 일이 있어서 뛰었더니 몇몇 사람이 나를 붙잡고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스레 물었을 정도다. ‘폴란드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도둑뿐’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자연환경을 중요시하는 것도 학교 교육에서 출발한다. 정규 수업 중에는 개·뱀·고양이 같은 다양한 동물을 만져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놀이방에서는 환경보호에 대한 강의를 꾸준히 한다. 범죄행위로 규정돼 있기도 하지만 폴란드에서 꽃을 꺾는 등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다. 이런 걸 잘 모르는 몇몇 한국 사람이 봄에 나물 캐다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을 겪었을 정도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연을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까지 덤으로 얻었다. 한국에선 뭐든 ‘빨리 빨리’하느라 아파트 주변 나무도 제대로 살필 시간이 없었지만 이젠 “나뭇잎 색깔이 연두색부터 초록색까지 다양하다”는 얘기를 한다.

폴란드에서 0~3학년 학생은 혼자 등·학교 하는 게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부모가 올때까지 아이들은 수업 후 놀이방에서 기다린다.

아이 안전이 최우선

폴란드에서 아이 키우기가 한국보다 전반적으로 좋다. 하지만 엄마로서 좀 어려운 점도 있다. 대표적인 게 등하교 시켜주기다. 폴란드는 초등 3학년까지는 아이 혼자 다닐 수 없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등하교를 포함해서 말이다. 만약 3학년 아래로 보이는 아이가 혼자 걸어가고 있으면 경찰이나 어른이 “몇 학년이냐”고 물은 뒤 부모에게 연락을 취한다.

이젠 어느 정도 적응하긴 했지만 솔직히 힘들고 귀찮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제도가 있으면 등하굣길에 발생하는 사건·사고가 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함께 다니는 것만큼 안전한 건 없을 테니 말이다. 항상 부모와 함께지만 학교 안에서만은 다르다. 2011년부터 부모가 교실에 가는 건 금지하고 있다. 부모를 가장한 외부인의 출입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란다.

한국에서 학부모에게 매일 자녀와 함께 등하교 하라고 하면 “워킹맘은 어쩌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거다. 폴란드에서는 한 반 아이 엄마의 70%정도가 워킹맘이다. 그런데도 불만이 적은 건 모든 학교에 0~3학년을 위한 놀이방이 있기 때문이다. 정규 수업보다 개설된 반과 교사 수가 더 많다. 예를 들어 지우 학교엔 학년별로 4개 반이 있는데, 놀이방은 5개 반이 있다. 놀이방 교사는 한 반에 2~3명이다. 직장 다니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부모를 기다리면서 학교 놀이방에서 책을 보거나 놀거나 숙제 등을 할 수 있다. 놀이방은 보통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웬만한 회사는 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4~5시까지기 때문에 자녀 등하교를 도와주는 게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거다.

폴란드 교육 환경
교육열, 한국만큼 뜨거워 … 고교만 졸업해도 3~4개 언어 소통 가능

폴란드는 유럽 내에서 교육열 높기로 유명하다. 만족도도 높다. 유럽 시장조사기관인 GfK 조사 결과 지난해 폴란드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 교육정책을 꼽은 사람은 전체의 3%밖에 안 됐다.

 폴란드 학제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4년으로 한국과 비슷하다. 1999년 교육제도 개정 후 고교까지 의무교육이다. 취학 전엔 유치원을 1년 이상 다녀야 한다. 사립유치원은 한 달 비용이 60만~70만원 정도로 비싸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지만, 공립유치원은 한 달에 20만원 내로 저렴하다보니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인기 있는 곳은 임신하자마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다.

 초등학교 저학년(1~3학년)에서 고학년(4~6학년)에 올라가면 달라지는 게 많다. 보통 담임교사가 3년간 계속 같은 반을 맡는데 저학년 때는 전 과목을 담임교사가 가르치고, 고학년은 과목 별로 다른 교사가 맡는다.

 폴란드에선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이중언어학교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영어-폴란드, 러시아-폴란드, 스페인-폴란드 학교 식이다. 바르샤바에는 공립 이중언어학교가 딱 두 곳밖에 없어, 경쟁률이 50대 1이나 된다. 부모 모두 폴란드사람인 경우보다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국적인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이 지원한다. 사립 이중언어학교에 들어가려면 졸업시험 외에 따로 그 학교 입학시험을 또 봐야 한다.

 굳이 이중언어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중·고교에서 여러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중학교에 가면 제1외국어는 필수, 제2외국어는 선택이다. 제1외국어는 주3회, 제2외국어는 주2회 수업한다. 또 방과후수업으로 개설한 외국어 수업을 들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3~4개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다.

 초·중·고를 졸업할 때마다 항상 졸업시험을 치른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점수 50%와 내신 점수 50%로 원하는 대학에 지원한다. 이외에 각종 경시대회나 능력평가 시험 성적도 반영한다. 중학교 졸업 후 기술학교에 가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처럼 대부분 일반고에 진학해 대학에 가는 걸 선호한다.

엄마 조민희(41·폴란드 바르샤바)
정리=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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