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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앞·청담동 싫다 … 연희동 뒷골목에 모인 젊은 사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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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러가 쇼핑센터’ 앞 대로엔 중국집이 많다. 인근 화교학교 때문이다. 요즘 그 뒷골목 ‘연희로 11가 길’에 작은 식당과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모두 큰길의 번잡함이 싫어 뒷골목을 찾았다는 30대 젊은 사장들이다. 진정성 있는 아이디어로 ‘멀리서도 찾아오는 집’을 만들겠다는 도전의식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 골목만의 여유롭고 우아한 분위기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스스로를 ‘연희동 뒷골목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우아한 뒷골목’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대 앞이 포화상태라 상수동·합정동을 거쳐 연남동까지 식당가가 퍼지고 있어요. 성산로만 지나면 바로 연희동인데 이곳 ‘연희로 11가 길’이 그 소용돌이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죠. 이 길을 사이에 두고 1종 주거전용 지역이거든요. 상업시설이 함부로 들어설 수 없단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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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 전 이곳에 이탈리안 식당 ‘작은 나폴리’를 연 류창현(40) 사장은 바로 앞 전용주거지역 때문에 상권이 더 이상 커질 수 없다는 게 마음에 든다고 했다. 성신여대 앞 ‘놈’, 고대 앞 ‘맨 인 나폴리’도 운영하는 류씨는 뜨내기 유동인구가 없는 ‘조용한 거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홍대 앞 놀이터 인근에서 대형 카페를 운영했던 ‘노아스 로스팅’의 이윤정(40) 사장도 1년 전 주저 없이 이곳으로 옮겨 온 이유를 “어른들의 거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커피 한 잔이라도 맛을 음미하면서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손님이 반갑죠. 홍대 앞 젊은이들은 대다수가 쇼핑도 해야 하고, 클럽에서 놀기도 해야 하는 친구들이라 바쁘죠. 그런데 이곳은 뒷골목이라 동네 주민이거나 일부러 찾아오는 분이 대부분이에요. 대중교통도 불편해서 집이 근처거나 차가 없으면 오기 어렵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으면 이 한가로움을 즐길 수 없죠.”

 ‘연희로 11가 길’ 전용주거지역엔 1970년대에 지어진 양옥집이 들어서 있다. 잔디 깔린 마당을 갖춘 330㎡(100평) 이상의 큰 집들이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소인 동양부동산에 따르면 주민 대부분이 40년 이상 이 동네에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다. 장성한 자식들이 휴일이면 본가를 찾고, 그들이 외식을 위해 동네 골목 밥집과 카페를 찾고, 맘에 들면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내고, 그 지인들이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조용한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윤정 사장은 이 동네를 ‘연희읍’이라고 부른다.

성게 두 개 분량의 알과 신선한 날치알을 듬뿍 얹은 ‘작은 나폴리’의 매콤달콤 성게명란 파스타.

 “오래된 부촌 특유의 조용한 커뮤니티가 강하죠. 정자나무 밑 시시콜콜한 수다는 없어도 서로의 성향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조용조용 입소문이 퍼지죠. 출근시간이면 저희 집 카페 앞에 커피를 사기 위해 자동차들이 줄을 서는데 이젠 유리창 밖에 서 있는 차만 봐도 어떤 커피를 주문하는 분인지 알 수 있어요. 요란한 인사말은 없어도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뒷골목은 점포 임대료가 비교적 싸다. 자본금이 부족한 30대 사장들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에겐 멀리서도 찾아오는 집을 만들겠다는 ‘도전의식’과 소박한 진정성이 있다.

 이태원 ‘빌라 소르티노’, 청담동 ‘그라노’에서 근무하던 지배인 몽고(그는 본명보다 굳이 영어이름 사용을 원했다)씨와 셰프들이 자기 건물로 들어오라는 어느 신문사 회장님의 제안도 거절하고 이 골목으로 들어온 이유도 그것이다. 사장 몽고씨는 “5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했지만 대기업 회장님들이 벤틀리, 마세라티 타고 오는 집을 만드는 게 목표였고 1년 만에 그 목표를 이뤘다”고 했다. ‘몽고네’는 꽃미남 셰프들이 클래식한 이탈리안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인터넷에서 유명하다.

 커피가 좋아서 커피연구소를 시작했다는 김종필(35)·종진(32) 형제가 원두와 ‘더치 커피(콜드 브루)’를 파는 ‘매뉴팩트’도 소문난 집이다. 위치도 2층이고, 유리창엔 그 흔한 상호명 하나 안 적혔지만 입소문만으로 쉴 새 없이 손님들이 방문한다. 형제는 “요란한 간판은 이 골목의 소박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라 싫다”며 “커피에 대한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분들이 찾아주면 그걸로 족하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봉쥬르 밥상’을 운영하는 정윤지(28)·은주(25) 자매의 아이디어도 성공했다. 장손 며느리인 어머니의 장기인 쇠고기 설렁탕이 주메뉴인데 어쩐지 이 골목엔 ‘설렁탕 집’이라는 상호보다 좀 더 세련된 이름이 어울리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봉쥬르 밥상’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식사를 낼 때도 들깨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와 차가운 연두부를 전채 요리로 대접한다.

 삶에는 쉼표가 필요하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을 하는 시간에도 쉼표는 찍힐 수 있다. ‘연희동 뒷골목 사람들’은 이 골목에서 그 쉼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 골목을 걸으며 부촌 특유의 잘 손질된 정원수를 감상할 수 있는 건 쉼표 옆에 붙은 공백이다.

서정민 기자
사진=김상선·최승식 기자

연희동 터줏대감, 이들을 모르면 …

1986년 문을 연 ‘연희동 칼국수’는 사골국물로 만든 육수가 진미다. 감칠맛이 제대로 든 백김치 때문에 온다는 사람도 많다. 80년대 초부터 2대째 운영하는 빵집 ‘피터팬’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도 단골이었을 만큼 유명한 곳으로 옛날 빵맛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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