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로보닥이 의사 손보다 낫습니다 정교한 수술로 빠른 회복 돕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이춘택 병원장이 최근 로봇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정화순(여·76) 씨의 수술결과를 점검하고 빠른 회복을 위한 관리법을 설명하고 있다.

로봇이 외과의사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수술이 정교한 데다 감염률이 낮고, 시간을 단축해 환자의 빠른 회복을 가능케 한다. 의료용 로봇 불모지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일가를 이룬 의료인이 있다. 경기도 수원에 자리 잡은 이춘택병원 이춘택 원장이다. 그가 발전시킨 로보닥은 정형외과에선 독보적이다. 수술 정확도는 100%에 가깝고, 재수술률 또한 1%로 낮춰 입소문으로 환자들이 알아서 찾아온다. 10여 년에 걸쳐 로보닥을 이용해 그가 수술한 환자는 1만여 명을 육박하고 있다. 그는 로봇의 수술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자연히 감염률은 낮아지고, 환자 만족도는 높아졌다. 로봇의 가치가 그의 손에서 재조명된 것이다. 이 원장이 로봇 인공관절수술의 개척자로 불리는 배경이다.

인공관절수술은 보통 퇴행성관절염 말기환자가 받는 수술이다. 무릎관절 연골이 닳아 없어져 관절을 깎아내고 인공관절을 끼워 넣는다. 기존 관절을 대체해서 ‘인공관절치환술’로도 불린다.

 이 분야에 로봇이 도입됐다. 정확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서다. 고관절·무릎관절·발목관절의 각 중심부가 이어지는 선과 대퇴골이 이루는 각도가 사람마다 다른데, 이에 따라 인공관절을 정확하게 심어야 한다. 3도·7도 등 육안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각도까지 구분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 원장은 로봇수술에 주목했다. 1998년 로봇수술을 접하면서 새천년을 준비할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2002년 10월 국내 최초로 로봇 인공관절수술에 성공했다. 세계에서는 독일·일본에 이은 세 번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수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로봇 인공관절수술은 무릎 피부 절개, 수술공간 확보, 정합, 기존 관절 절삭, 인공관절 주입, 봉합의 여섯 단계를 거친다. 이 시간이 손으로 하는 기존 수술시간(90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료진의 피로도는 오히려 더했다. 정합과 절삭 과정 때문이었다. 정합은 수술 환자의 실제 뼈 위치를 로봇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정합은 총 90개의 점을 찍어야 컴퓨터가 정확하게 인식한다. 다 찍어도 결국 정합에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찍어야 했다. 어느 지점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어서다. 마치 바둑의 기보(棋譜)에서 바둑알 하나의 위치가 틀렸다고 처음부터 다시 둬야 하는 꼴이다. 이 과정만 10분 이상 걸렸다. 이 원장은 “정합을 잘못하면 새로 다시 해야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의사는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정합시스템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23개의 점만 찍어도 충분한 시스템을 완성했다. 게다가 잘못 찍은 부분만 수정하면 되도록 개선했다. 그렇게 정합 시간은 2분 이내로 단축됐다. 8분여를 줄이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춘택 병원장이 퇴행성관절염 말기환자에게 로봇 인공관절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수술 시간 30분 줄이고 반쪽만도 가능하게

정합시간을 줄이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의료진은 편해졌지만 총 수술시간을 줄이는 데는 미미했다. 뼈를 깎아내는(절삭) 시간을 줄여야 했다. 수술 중 가장 오래 걸리는 과정이었다.

 기존 로봇은 관절 뼈를 차근차근 깎아내는 방식이다. 시계방향으로 층계를 하나씩 밟아 내려가듯이 깎아 나간다. 뼈 단면을 한 바퀴 돌 때마다 1.2㎜씩만 깎아 내려가기 때문에 속도가 너무 더뎠다. 절삭 과정만 35~40분가량 걸렸다. 손으로 하면 20분 정도 걸리는 시술이었다.

 이 원장은 개념을 완전히 바꿨다. 드릴 등 절삭기구가 뼈의 측면에서 바로 뚫고 들어간 이후 다듬어가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절삭기구도 새로 만들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5분 안에 끝날 수 있게 됐다. 30분 이상 수술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이 원장은 “로봇이 절삭을 정확하게 하도록 설계됐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도록 만든 것이었다”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로봇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발한 시스템을 학회에서 발표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그는 “학회 발표 당시 의사들이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고 비아냥거렸다”며 “하지만 이제는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본지 선정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인’ 연구개발 부문 대상을 비롯한 각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성과는 이뿐이 아니다. 2008년 세계 최초로 로봇 무릎인공관절 반치환술에 성공했다. 반치환술은 무릎 반쪽만 인공관절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안쪽 무릎과 바깥 무릎 중 연골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부분은 최대한 살리는 방법이다. 까다롭기 때문에 손으로 하는 수술에서도 반치환술 대신 완전치환술을 하곤 한다. 이 원장은 “내측 무릎이 망가지고 외측은 깨끗할 경우에는 다 들어내기가 아깝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까다롭지만 수술 범위가 크게 줄기 때문에 환자는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로봇 인공관절수술, 현재도 진화 중

로봇 인공관절수술은 이 원장의 손에서 발전해 왔다. 정합시간은 기존 10분대에서 3분대로 짧아졌고, 다시 2분 이내로 단축됐다. 절삭 과정은 지난해만 해도 10분대였지만 올해 들어 5분 안에 가능하게 됐다. 연구를 거듭한 결과다.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전히 수술법이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이제 뼈를 깎는 작업과 인대 균형을 동시에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둘 중 하나를 먼저 한 뒤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방식만 가능하다. 이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환자의 예후가 더 좋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절삭과 인대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동시에 하면 무릎을 구부리는 힘이 커질 수 있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며 “이것이 가능해야 비로소 로봇 인공관절수술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개발한 절삭·정합 시스템은 각각 ‘로봇을 이용한 관절 절삭시스템’(2008년), ‘객체 정합 장치 및 그 방법’(2013년)이라는 이름으로 특허청에 등록됐다. 이렇게 개발된 로보닥은 기존 수술에 비해 다양한 특장점을 갖는다. 절개 부위가 작고 수술시간도 50분으로 거의 절반 수준이다. 보통 일주일이 걸리는 수술 후 보행도 수술 당일 가능하다. 수술과 회복이 빠르기 때문에 양 무릎 수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인공관절수술의 질을 의미하는 중심축·회전축 정렬과 인대 균형은 각각 100%, 98%로 기존 수술(70~80%)과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수술 시 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인공관절이 빨리 닳아 1~2년 만에 관절이 함몰된다. 인공관절의 축 정렬과 인대 균형은 환자 삶의 질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이를 개선했기 때문에 인공관절의 사용연한은 자연히 연장된다. 기존 수술 10~15년에서 15~20년으로 최대 10년 정도 늘어난다. 그만큼 정확하게 삽입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재수술률은 20%에서 1%로 줄고, 수술만족도는 80%에서 98%로 높아진다. 게다가 로봇수술은 골다공증 환자도 받을 수 있다. 골다공증 환자는 뼈가 무르기 때문에 인공관절수술을 받기 어렵다.

글=류장훈 기자 , 사진=김수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