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시장과 제도 금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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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의 사채 시장 동향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채 이자율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오르고, 유통 규모도 커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자금순환에 어떤 차질이 생기고 있거나 수급에 불균형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런 차질과 불균형은 장기화 될수록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고 구조적인 「인플레」요인을 누적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금융 제도가 완벽하게 구비되기 전까지는 물론 사채 시장도 훌륭한 보완 금융 기구로 작용할 수 있고 실제 우리 경제에서도 일부 그런 기능을 맡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채 시장 동향은 그 기능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자칫 제도 금융의 안정성 마저 위협할 소지가 없지 않다. 사채 시장의 공급 경로를 보면 이런 우려는 충분히 근거가 있다.
전통적인 사채란 원래 생산과의 관련이 적은 상업적 고리대가 주류를 이루어 왔으나 거의 5천억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는 최근의 사채 자금은 단기 부동 자금뿐 아니라 자본시장·금융기관 예금, 심지어 신탁자금까지 누출되어 사채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채 규모의 대형화 추세는 물론 부동산 경기가 크게 가라앉고 자본시장의 투자 유인도 이전보다 퇴색한 데 큰 영향을 받고 있으나 무엇보다도 전반적인 「인플레」 추세와 장래의 「인플레」 기대감으로 인해 시장 이자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화 된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반면 수요 측면에서는 작년 이후의 이례적인 호황으로 기업의 자금 수요가 매우 높은 수준에까지 상승한 데다 올해 2·4분기 이후의 유동성 규제가 겹쳐 자금난이 더욱 증폭된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최근의 자금 사정과 사채 시장 움직임은 서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정책 접근으로 이 매듭을 풀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통화 당국이 긴축 노력을 지속할 의향이라면 무엇보다도 제도 금융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제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정된 금융 자금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별적 여신을 강화하여 전략 부문의 생산 둔화를 최대한 막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전반적인 시장 이자율의 상승 추세를 억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인플레」 수속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금리 정책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우며, 금융 자금의 수익률을 함께 안정시키려는 복합적 노력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의 안정 회복과 저축 증대의 중요성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양한 금융시장이 서로 균형을 이루어 안정될 때 사금융의 영역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사채 시장 번성의 주인이 되고 있는 기업의 자금 수요는 지금 같은 이자율 추세로 보아서는 장기간 지속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연율 30∼40%의 금리 부담을 안은 채 기업 활동을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조만간 자금 수요는 새로운 축소균형의 양상을 보일 것이다.
이 경우 우려되는 것은 설비 부족으로 인한 경기 후퇴이나 제도 금융의 효율을 높이고 자본시장이 안정을 회복하면 설비 금융의 원천은 충분히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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