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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81년 6월 4일 4면] '뻐꾸기도 밤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70년대 후반 유지인, 장미희와 더불어 ‘2세대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윤희 주연의 영화다. 1980년에 제작됐지만 1981년에 개봉, 11만 224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7위를 기록했다. 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한 이래 ‘얼굴은 예쁘지만 연기는 그저 그런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던 정윤희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함께 출연한 남자주인공 이대근 역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윤희는 이 영화를 연출한 정진우 감독과 81년에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를 찍었고 또 한 번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당시 여자들에게 노주현, 한진희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어려웠다면 남자들에겐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중 이상형을 선택하는 게 고민이었다. 그만큼 2세대 트로이카의 인기는 최고였다. 서구적인 마스크의 유지인, 동양적인 얼굴에 신비감이 있었던 장미희.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마도 정초함과 섹시미의 경계를 넘나드는 묘한 매력의 정윤희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2005년 한 여성잡지에서 영화계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국 여배우 최고 미인’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을 때도 ‘정윤희’는 1위를 차지했다.

어린 시절, 정윤희라는 여배우를 기억했던 남자들은 지금도 눈망울이 크고 눈웃음이 순수해 보이는 여배우를 보면 ‘정윤희 닮았다’는 찬사를 한다. 배우 수애가 대표적이다. 그는 데뷔 초 정윤희와 너무 닮은 외모 때문에 연예 기자들 사이에서 ‘딸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그래서 한동안 수애는 인터뷰 자리에서 기자의 첫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본인이 먼저 “저, 정윤희 선생님 딸 아니에요”라는 말부터 했다. 가수 수지를 발탁한 박진영도 “수지를 처음 본 순간 정윤희를 떠올렸다”고 했다.

인기 절정이던 84년, 조규영 중앙산업개발 회장과 결혼하며 영화계 은퇴를 선언한 정윤희는 이후 단 한 차례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전성기 시절 모습을 보고 싶다면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정윤희’를 검색한 후 동영상 코너에서 해태제과 아이스크림 광고를 참고하면 된다. 또는 유튜브에서 영화를 검색해서 볼 수 있다. 2012년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이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 고전 영화들을 볼 수 있도록 고전영화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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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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