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교육의 초석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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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생님, 기어이 가셨군요. 여러 달 누워 계시던 그 병상에서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시고 영영 가셨군요. 선생님의 그 관후하신 용모와 부드러운 성해를 이제 다시 접할 길이 없다고 생각하니 평소에 선생님을 자주 찾아 뵙지 못한 것이 새삼 한스럽습니다.
선생님을 제가 처음 만나 본 것은 해방된 이듬해 서울대 강의실에서 였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패기만만한 중년 학자로서 서양사를 전공하려는 젊은 저희들을 친자식이나 동생들처럼 극진히 보살펴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해방후의 그 불편한 교통을 무릅쓰고 한 주에 이틀씩 꼭꼭, 이제는 다 현재 없어진 붉은 벽들 강의실과 서양사 연구실에 나타나셔서 저희들을 지도해 주셨읍니다.
선생님은 선진한 서구문화의 유입을 엄중히 탄압하는 일제의 야만스런 문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일찌기 서양문학의 연구에 몸바치기로 결심하시고 그 초지를 관철하시었읍니다.
선생님의 그 뜻이 헛되지 않아 선생님께서 무린 씨알들이 오늘 수없이 선생님의 뒤를 쫓고 있읍니다.
선생님은 한국 서양사 학계의 초석이 되셨읍니다.
해방된 우리나라의 학계는 황무지나 다름없었읍니다만 특히 서양사 학계가 그러하였습니다. 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분이라곤 온통 서너 분밖에 안 되는 황무지에서 선생님은 그분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서양사 교육의 초석을 놓는 한편 한국 서양사학회를 창립하시어 초대 회장으로서 다년간 학회의 성장을 위하여 노심초사하시었습니다. 창립 당시에는 회원이 10여명에 불과하였던 서양사학회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이제 우리나라 서양사 학도들의 집결체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님의 그 노심초사의 결과입니다.
선생님은 한 평생 한번도 연세대를 떠나신 일이 없었읍니다. 해방후 적지 않은 학자들이 대학문을 들락날락 하면서 좌왕우왕 할 때도 선생님은 학문과 교육에만 전념하시었읍니다.
선생님의 그 꿋꿋하신 자세와 개척자적 정신은 선생님이 남기신 학문적 업적과 함께 이나라의 사학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노명식 <한국서양사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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