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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자투고에 비친|세태13년|큰일 작은 일들이|골고루 거울처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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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사를 오려 「스크랩」을 만들고 한줄 한줄 줄을 그으면서 살림계획을 짜고, 새로운 된장국을 끓이고, 집안구석을 개선하고, 아이들의 성장에 보탬을 주는, 그런 신문이 매일매일 우리집 현관에 배달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어느 주부가 70년3월7일 그동안 4면 짜리 신문에서 8면으로 증면된데 대해 「손거울」난에 투고한 글이다.
중앙일보가 65년9월22일 창간하고 13년간 독자들은 「사회의 거울」을 매일매일 대함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들의 소리를 투고해왔다. 매년 평균 거의 2천통이 넘는 이 글들은 바로 이사회를 향한 민성이고 또 한면의 「거울」 이기도 했다.
「청실홍실」(65년9월∼70년2월), 「손거울」(70년3월∼)에 보내온 이「소리」들만 봐도 그것은 지난13년간 한국사회의 흐름이며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저 깊숙한 바닥의 반향임을 알게한다.
『꼭3년 동안 그 세윌이 어떤 이야기를 남길까. 그분을 보내면서 착잡한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오자애·44년4월21일자) 서독에 애인을 광부로 보내며 「여인의 마음」을 비춰 내보인 것에서부터 간호원, 그리고 월남파병, 중동에의 인력수출에 이르기까지 「우리 한국사람」의 뻗어나가는 소식들도 이 독자의 소리속에서는 애틋한 이웃사랑의 정으로 한결 쓰여져 있다.
『엄마, 「바캉스」는 먹는 것이야? 구경이라도 했으면 좋겠네요-. 신문마다 매일 나는「바캉스」 타령 때문에 집집마다 우리처럼 부모들 가슴이 아프겠지…』(이정순·67년7월27일자).
『「버스」속 건너자리에 앉은 아가씨의 다리를 물끄러미 훑어보니 그 아가씨는 부끄러워 눈둘곳을 몰라한다. 그러면서 왜 「미니·스커트」는 입고 다닐까?』 (박승화·68년5월30일자)
60년대 중반을 휩쓴 「미니·스커트」유행, 그리고「마이·홈」이라는 외래어의 등장과 함께 나온 「바캉스」이야기도 차갑게, 그리고 선명하게 그려진다.
하루평균 5,6통에서 많을 땐 60여통까지 쏟아지는 투고의 내용은 ①가정속의 갖가지 얽힌 이야기 ②사회에 대한 고발과 의견 ③개인의 정서적 소감들 ④경제생활, 돈에 얽힌 이야기⑤취미생활 등이 대부분. 65∼70년에는 가정사에 대한 투고가 으뜸으로 많아 전체의 20%정도를 차지했고 다음이「사회고발·제언」 (16% 정도,「개인의 정서적 이야기」 (10%), 「경제문제」(9%)등의 순서였다.
그러나 70년 이후 「손거울」에선 가정 안에서 얽힌 엄마·아빠의 이야기, 결혼이야기 보다는 「사회고발」(24%)과 「경제문제」(18%)가 한층 많이 다루어졌다. 「경제개발」의 국가적「슬로건」이 가정과 개인생활에서도 『돈을 벌겠다』『윤택한 생활을 해보겠다』는 뜻과 새로운 「아이디어」들 펴는 글들이 특히 많이 늘어났다.
『1천 그루의 어린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지켜봐도 기쁜데 내년 봄이면 우리집 빠듯한 가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최태순·70년 6월11일자). 부업에 대한 주부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바로 70년대에 들어서부터다. 각종 강습회와 부업 「가이드」 책들이 인기를 모은것과 때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을 향한 마음들은 이사회의 어두움, 물질만능으로 치솟는 야박한 세태를 꼬집는 더욱 큰 「소리」를 외친다.
「아파트」투기, 결혼 4년간 아껴아껴 25평「아파트」에 살고싶어 빚까지 얻어 신청했던 어느 주부는 7번 추첨에 떨어지고 『집없는 서민들이 내집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 한편에선 투기다, 특혜다해서 이렇게 엄청난 거리감을 만들고 있었구나』 (장혜선·78년7월5일자)하면서 분노의 소리를 썼다.
『수두룩한 세금영수증을 보며 우리 식구가 이땅에서 살아도 된다는 허가장으로 생각했다. 부지런히, 그리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일한만큼 살수있는 사회가 이룩될수 있을 텐데』 (이경희·72년5월29일자). 밝은 사회를 이루고 싶은 안타까운 고발과 제언이 특히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부조리」「부정」 사건에 화살을 찌른다.
『「버스」여차장의「삥땅」을 막는다고 계수기를 설치하다니…나는 일부러 계수기를 밟지 않으려고 펄쩍뛰어 넘어 올라갔다』(조현·74년7월23일자) 사회의 질서가 곧 나의 생활·내 가족과 연결된다는 의식이 주부독자들의 투고속에서 점점 역력하게 새겨지고 있다.
더우기 이것은 한국의 현실, 한국의 분단현실에 대한 깊고 근본적인 문제에도 두드러진다.
『우리사람들이 평양에 갔다왔다지? 하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러 시오리길을 걸어오셨다는 노인을 뵙고 그 심정을 어찌 예사로 헤아릴 수 있을까?』 (김영숙·72년9월14일자).
『통일이란 낱말앞엔 오직 가슴이 메어져올 뿐이다』 (장경애·72년9월26일자).
사회의 부조리와 함께 가장 「우리」를 누르고있는 것이 「분단」이라는 것이 중앙일보 95만 독자의 투고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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