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Healing |후박사의 힐링 상담] 직장 내 남녀 스캔들 극복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그녀는 40대 중반의 직장생활 20년차 커리어우먼이다. 비서로 출발했다. 남다른 노력으로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는 어엿한 중간 간부가 됐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항상 좋지 못한 소문이 따라다닌다. 남자 상사와의 스캔들이다. 얼마 전 승진했을 때 그 소문은 절정에 달했다. 평가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 그 상사 덕에 승진이 됐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인정한다. 둘이 갈 때까지 갔다고들 한다. 그간 직원 여럿이 그녀와 그가 둘만의 식사를 하거나,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대화하는 모습 등을 목격했다. 둘은 어쩌다 해외 출장을 같이 가기도 했다. 그러니 사실이 어떻든 나쁜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억울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녀는 그 상사와 사이가 예전같이 않음을 느낀다.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도 흉흉한 소문을 들었을 터다. 최근 사소한 의견 차이가 있었는데 그는 화를 버럭 내면서 배신감을 토로한다. 그간 도와준 게 얼만데, 승진했다고 달라졌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이래저래 힘들다. 달라졌다고 하는 것도 힘들고, 소문은 더욱 힘들다. 앞으로 스캔들 소문이 증폭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말 모르겠다.

입사는 능력, 승진은 충성도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돋보인다. 여의사는 전체 의사의 30%를 훌쩍 넘었고, 사법고시 여성 합격률은 40%에 이른다. 공무원과 대기업 여성의 합격률도 남성에 육박한다. 그렇지만 직장 내 승진은 다르다. 승진은 남성들에게 밀리기 일쑤다. 승진을 위해선 남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열정이 필요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는 것은 이상일 뿐이다. 남보다 탁월한 인간관계 능력도 요구한다. 윗사람에게 충성해야 하고, 동료한테 잘 보여야 하고, 아랫사람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인맥과 네트워크 구축은 필수다. 이런 말이 있다. ‘입사는 능력이지만, 승진은 충성도다’. 이래저래 여성은 불리하다.

한국 사회에서 스캔들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치명적이다. 스캔들은 불명예스러운 소문,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다. 현대인은 수다와 가십을 좋아한다. 직장에서 동료들끼리 모여 상사를 욕하거나, 신문에 보도된 특정인의 사생활을 험담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스캔들은 도마에 가장 잘 오르는 메뉴이다. 수다와 가십은 ‘스트레스 해소’라는 선기능이 있다. 그런데 거짓 소문도 확대재생산이 가능하다. ‘마녀사냥’의 역기능이 나타날 수 있다.

마녀사냥을 자주 목격한다. ‘왕따 현상’이라고 부른다. 근거 없이 특정인을 따돌리고 비난하는 현상이다. 마녀사냥의 기전은 사회전염과 희생양으로 요약된다. 어느 직장이나 왕따는 있는 법이다. 우리는 회식자리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성토한다.

이런 현상은 인터넷에서 치명적이다. 사실 확인이 안 된 정보가 인터넷에 자주 유통된다.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한 사람이 순식간에 사회에서 매장된다. 잘 나가던 연예인·정치인·사업가 등 유명인들이 쉽게 표적이 될 수 있다. 집단주의 속성과 인터넷 발달은 ‘왕따 왕국’ 건설의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분명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 그녀는 진정으로 성공을 원했다. 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항상 자기 의견보다 상사의 의견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자신의 기준은 중요치 않았다. 그가 말하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의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상사의 조언을 따랐다. 그녀는 진정으로 승진을 원했다. 자신의 욕구는 중요치 않았다. 상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갔다.

주위 시선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상사의 의견과 반응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끔 그의 노예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자신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드디어 원하던 승진을 이루었다. 하지만 뭔가 삐걱거린다. 이제 그녀는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처신이 스캔들의 소재가 되어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인정·충성·희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직장에서 인정과 충성은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조직 변화를 위해 누군가의 자발적인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런데 유독 인정·충성·희생의 덫에 걸린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조건부 사랑’ 가정에서 자란 경우이다. 원래 부모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조건부 사랑이 너무 강조되면 진정한 자아상 형성에 실패하기 쉽다.

또한 부족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랑 갈망은 인정·충성·희생의 덫에 빠져들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남보다 잘 하기 위해, 부족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보상을 받기 위해 윗사람에게 잘 한다. 그런데 덫에 빠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반응하고 행동한다.

이를 테면, 상대의 평가를 통해서만 자부심을 가진다. 자신의 의견과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한다. 상대의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한다. 보통 억압된 것은 공격성으로 작용한다. 공격성이 밖으로 나타나면 가학적이 되고, 안으로 들어가면 자학적이 된다. 그래서 수동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행태는 쉽게 희생양의 표적이 된다.

최근 종영한 JTBC ‘밀회’는 지금까지의 한국 TV 멜로드라마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역작이다. 20살 연상녀와 연하남의 불륜을 다루었다. 주인공 혜원(김희애)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고픈 일념으로 자신의 삶을 100% 희생했다. 결혼도 그런 목적에서였다. 인정과 충성의 굴레 속에 영혼 없는 ‘고급 노예’로 살아왔다.

그런 혜원이 20살 연하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유아인)를 만난다. 둘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재단 비리가 드러나고 금고지기 역할을 해오던 혜원은 희생양이 되기를 강요 받는다. 그런데 혜원은 모든 것을 폭로했다. 선재와의 사랑을 변화의 에너지로 활용했다. 인정과 충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은 것이다.

당당하다면 철저히 무시하라

그녀에게 가장 탁월한 처방은 무엇일까? 다행이 그녀는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감지하고 상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심리적, 사회적 인식이 들어선 것이다. 물론 당장 배신감을 느끼는 상사와의 하루 일과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우선 아무리 상사라도 이성 간에는 조심하는 게 중요하다.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사적인 만남은 항상 위험하다.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둘 사이에 교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는 법이다.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스캔들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좋다. 밀회 여주인공의 스캔들은 근거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했다. 그녀는 혜원과 다르다. 둘 사이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부서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새로운 상사와의 새 출발이 필요하다.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