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랑 음료수엔 코믹 모델 어울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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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화창한 봄 날. 아담한 집 한 채가 흔들린다. 꼬마의 목구멍을 통해 자상한 할머니의 모습이 비친다. 손자의 아픔을 덜어주려는 할머니는 흔들리는 손자의 앞니에 실을 걸고 있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아빠와 작전을 짠다. 할머니가 윙크 사인을 보내자 아빠가 모르는 척하고 문을 연다. 아빠의 익살스러운 행동에 아이의 앞니는 뽑혀져 나간다. 그 모습은 아빠의 캠코더에 촬영되고 온 가족은 컴퓨터를 통해 함께 그 순간을 보며 즐거워 한다."

무슨 장면이냐고요. 지난 3월부터 방영되는 삼성전자의 기업 홍보 TV광고(또 하나의 가족, 사랑의 이뽑기 편)입니다. 이 광고에는 유명 모델이 나오지 않습니다.

찰흙으로 만든 인형들만 나오지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인 삼성전자가 광고를 하는데 인기있는 모델을 쓰지 않고 찰흙 인형을 쓴 이유가 뭘까요. 돈을 아끼기 위해서일까요. 그게 아닙니다. 일부러 유명 연예인을 쓰지 않은 겁니다.

대기업 홍보 광고에는 인기 연예인이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연예인의 이미지가 기업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죠. 삼성그룹 광고에는 무명 모델이 아버지와 아들로 나와 기차여행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SK텔레콤이나 KTF.포스코 광고도 대부분 그렇지요.

이처럼 기업의 크기나 제품의 종류에 따라 광고 모델도 제각각이에요. 이제 기업 광고와 모델의 관계를 하나씩 알아볼까요.

기아자동차 '카니발2' 광고는 제품 장점을 소개하는 말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만 보여줍니다.

기아차의 기업 홍보 광고도 '당신을 지켜드리기 위해, 안전에 대한 기아의 믿음은 계속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옵티마.리오 등 기아자동차 차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요.

삼성전자의 노트북 PC인 '센스' 광고에는 집게벌레가 등장합니다. 집게벌레가 나와 제품 특징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은 나타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제품 값이 비싸기 때문이에요. 비싼 제품을 광고할 때는 소비자의 시선이 분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통 유명 모델을 쓰지 않아요. 그래야 소비자들이 제품에 좀더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전제품이나 화장품.고급 샴푸 등은 유명한 모델, 즉 '빅 모델'을 씁니다. 광고할 제품이 대상으로 하는 연령대가 가장 선호하는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합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입고 먹고 쓰는 제품을 자기도 사려는 소비자의 심리를 활용한 것이죠.

LG전자는 최근 양문형 냉장고 '디오스'의 모델을 탤런트 김희선씨에서 송혜교씨로 바꿨어요. 송혜교씨는 요즘 출연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광고업계에서 가장 비싼 모델 중 한명으로 통하고 있답니다.

예전에는 최고의 인기 여성 연예인은 화장품 광고에 주로 출연했지만 요즘에는 고급 가전제품 광고에 나오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고 하네요.

삼성전자 광고에는 채시라(하우젠).김남주(지펠 냉장고)씨가 나옵니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모델의 인지도가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전업계 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애경산업은 최근 영화배우 고소영씨를 고급 샴푸인 '케라시스 헤어크리닉 시스템'의 모델로 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미연(럭스).전지현(엘라스틴).고소영(케라시스)씨 등 '빅 모델'들이 샴푸 광고로 경쟁을 하게 됐지요. 물론 화장품 광고에도 최고의 미인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나 과자.음료 광고는 어린이나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인기 있는 개그맨이나 '재미있는'탤런트들이 주로 나옵니다.

지난해 롯데리아 광고에서 탤런트 신구씨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지요. 또 최근에는 롯데리아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김애경씨와 선우용녀씨가 등장, 독특한 외모와 콧소리로 웃음을 자아내고 있어요.

해태음료 '슈퍼팬돌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기 때문에 개그맨을 등장시켰어요. 개그맨 박준형씨가 나와 '갈가리 이빨'로 제품을 만드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리온 오징어땅콩은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에 출연하는 김흥수씨가 등장해 코믹한 광고를 하고 있지요.

캐주얼의류 광고에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소비자가 좋아하는 '멋있는' 연예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마루'의 경우 윤도현.김정화씨가, TBJ 광고에는 비.차태현.신민아씨가 동시에 나와 소비자의 시선을 잡으려고 하고 있지요.

물론 항상 특정 제품군에 특정 모델만 쓰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곳이든 예상치 못한 파격이 존재하지요.

소망화장품이 '꽃을 든 남자'를 광고하면서 축구선수 안정환씨를 등장시키거나, 잉스화장품 모델로 개그우먼 박경림씨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화장품 모델=미녀'라는 등식을 깬 것이지요.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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