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7) 제59화 함춘원시절 김동익 (28)|임명재·이정복·오한영등 5명이 발기|해방된해 12월 창립, 위원장엔 심호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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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5월12일 전북전주에서 열린 대한내과학회 춘계학술대회는 나의 학회활동 33년을 결산하는 느낌이어서 실로 감외가 컸다.
그동안 내과학회의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뜻에서 고창순박사(서울대의대 내과 교수·서울대학병원부원장)의 제창으로 모든 회원들이 내게 기립박수를 보내 주었을때 나는 33년전 학회를 조직하느라고 동분서주했던 보람을 감지할 수 있었다.
8·15해방으로 물러가는 일인들에게 대학을 떠맡자 우리는 함춘원의 질서를 바로잡는 한편 학술활동의 무대인 학회를 조직하는데 앞장섰다.
1945년12월4일. 뜻을 같이하는 내과학계의 선배와 동료 14명이 한자리에 모여 내과학회의 창설에대해 의견을 모았다. 경성대학의 학부 부속의원에서 였다.
이른바 발기인모임이었다. 우선 정기총회를 개최키로 합의하고 회칙초안위원으로 임명재 이정복 오주영 이갑수 김동익등 5명을 선정했다.
어느 모임이나 그렇지만 특히 의사들의 모임은 어렵고 까다롭다. 게다가 일제때부터 경성제대니 「세브란스」니해서 학벌싸움이 치열한 때이니 한번 모임을 가지려면 이만저만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그렇지만 과도기 어려운 시절에 모두들 기대에 부풀고 사명감이 강했기 때문에 비교적 잡음없이 발기총회준비는 진행되었다. 12월4일밤 우리들 5명은 임명재선배댁으로 가서 회칙을 만들고 손질을 했다. 발기총회는 15일 「세브란스」의전에서 열기로 했다.
당시 내과학계의 쟁쟁한 「멤버」30명이 참석한 발기총회는 별탈없이 진행되었고 창립총회준비위원으로 심호섭 오한영 장경 한용표 이정복 임명재 신용균 이갑수 박응천 김동익등 10인을 선정, 모든 사무를 위촉했다.
이제 창립총회만 열어서 회칙만 통과시키면 되었다.
우리들이 이 무임을 추진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것은 학벌간의 마찰을 방지하는 것이었는데 회의장소만 하더라도 발기준비위원회는 성대, 발기총회는 「세브란스」, 창립총회는 경의전 부속병원에서 열었다.
이렇듯 세심한 배려와 산고끝에 드디어 대망의 조선내과학회가 태어났다. 1945년12월23일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우리들에 의해 선정된 임원명단은 다음과같다.
위원장-심호섭 부위원장-오한영·이정복 총무부장-김동익(위원·이돈희·이갑수·한용표·강성도·유석균·윤형노·김승현)
학술부장-이정복(위원 최응석 장경 오세헌·최상희·임명재·박응천·이용겸) 지방부장-박병래(위원 신용균·이의식·강건하·김사일) 물론 이들 임원을 선출할때도 경의전·경성대학의 학부·「세브란스」의전에 적절히 안배하느라고 진통을 겪어야했다.
나는 학회를 꾸려나가는 총무부장을 맡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출신을 따지는 학벌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래서 항상 엄정 중립의 자세를 견지했다.
다들 잘해보자고 굳게 다짐했지만 내과학회의 활동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잘되질 않았다. 겨우 「회보」를 낸것이 창립한지 3년이 지난 48년8월이었으니까.
이젠 누렇게 낡고 헤진 22「페이지」짜리 그 「회보」를 들여다보니 총무부장인 나의 명의로 다음과 같은 인사말이 적혀있다.
『인사말삼 조선내과학회가 창립된지 벌써3년에, 아모 이러타할 진전을 보지못함은, 수왈세야나 유감천만이다. 위원회마다 학술잡지발간의 의가 나왔으나, 예산애로에 미수기의러니 금반 위원장의 용지희사의 호의를 바다, 잡지는 아니나마, 회보를 발간하게 되였다. (후략)』
이렇게 초창기는 활동이 지극히 부진했지만 지금 내과학회는 우리나라 의학의 핵심으로서 그 활동이 눈부실 정도여서 흐뭇하기 그지없다. 다른 학회도 이미 창립되었거나 창립을 서두르는등 어수선했는데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맨먼저 창립된 학회는 조선신경정신과학회다. 창립된 순서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창립일과 초대회장) 조선신경정신과학회 (45년9월1일 명주완) 조선소아과학회(45년10월6일 계선근) 조선피부비뇨기과학회(45년10월27일 오원석) 조선방사선과학회(45년11월1일 이부현) 조선내과학회(45년12월23일 심호섭) 조선병리학회(46년6월15일 윤일선) 조선미생물학회(46년11월5일 허달) 조선생리학회(46년11월10일 이갑수) 조선이비인후과학회(47년4월10일 박계양) 조선의사학회(17년4월30일 윤일선) 조선외과학회(47년5월10일 백인제) 조선약리학회(47년5월20일 이세규) 조선해부학회(47년4월20일 정일천) 조선안과학회(47년11월1일 윤봉헌) 대한화학요법학회(58년6월16일 전종휘) 대한 소화기병학회(61년10월15일 김동익)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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