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포커스]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 그 이유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나와 가족 중 누군가가 중병에 걸린다고 생각한다면, 크고 유명한 병원을 더 많이 찾는 환자들의 선택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규모가 크고 최신 장비와 신기술 도입이 빠르고 유명 의사가 많은 병원이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005년~2012년까지 건강보험 외래 진료비의 변화를 비교해보면 상급종합병원은 140%가 증가한 반면, 의원은 55% 증가로, 상급종합병원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동네의원은 저수가와 환자 부족이라는 ‘이중고’로 신음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 추진으로 환자쏠림 현상이 더욱 가중화될 것이란 점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희정 연구위원은 ‘대형 상급종합병원 환자쏠림 완화정책의 현황과 방향’ 보고서를 통해 환자쏠림을 해소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환자쏠림으로 인한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본다.

환자쏠림으로 인해 비정상적 의료관행 형성
환자쏠림은 2008년부터 정책적인 문제로 급부상했다. 초기에는 의료기관 간에 진료수입의 불균형 문제로 언급되다가 KTX개통으로 인한 ‘수도권 환자쏠림’이 문제가 됐다. 이후 환자 집중도가 수도권에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그리고 빅5대형병원으로 심화되고 있음이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돼왔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비급여 개선 정책이 중증질환자의 상급종합병원 의존도를 증가시켜 환자쏠림 문제를 고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환자쏠림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무엇일까. 강희정 연구위원은 ▲낮은 비용으로 치료 가능한 환자의 불필요한 지출 증가 ▲적절한 의료서비스의 제공 지연 ▲비정상적인 의료관행 형성 등을 꼽았다.

강 연구위원은 “만성질환자가 대형상급병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의 의사를 만나면서 의사를만날 때마다 중복 촬영 등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며 “또한 대기시간의 단축을 위해 비급여 상급병실 입원, 인맥을 통한 기간단축 등 의료서비스에 대한 형평한 접근을 막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환자쏠림은 의료전달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는 2단계 요양급여 진료를 제공하는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려면 1단계 요양급여 제공 기관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환자의 진료의뢰서 발급 요구를 거부할 권한이 의사에게는 없다.

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국민은 원하는 의료기관을 선택하는데 큰 제약이 없다”며 “따라서 환자쏠림의 완화 정책은 의료전달체계 개편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점유율 확대, 통제하기 어려워
중증질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은 상급종합병원들이 지역의 중증질환자에 대해 최고도의 급성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기대한다.

실제 희귀난치성 질환을 제외하고 암, 뇌혈관, 심장질환에서 건강보험 진료비의 50% 이상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산정특례 대상 암환자의 비급여 진료비중 약 60%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지출됐다.

또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 44개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한 전문진료질병군 환자의 1/3이상이 5개의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됐다.

강 연구위원은 “초대형 병원들은 신기술과 고가장비에 대한 거대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의료서비스 영역에서 독과점 위치를 차지하기 쉽다”며 “이들 기관의 점유율이 확대될수록 의료시장과 의료정책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건강보험 의과 외래 진료비 점유율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9.9%에서 17.7%로 7.8% 증가했고, 종합병원은10.2%에서 15.8%로 5.7% 증가, 병원은 5.3%에서 9.5%로 4.2% 증가했다. 반면, 의원은 74.6%에서 56.4%로 18.2% 감소했다.

이같은 의원의 점유율 감소는 환자가 의료이용에서 첫 대면하는 의원의 지속진료 기능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강 연구위원은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 개원가의 지나친 전문화와 단독개원 형태가 복합만성질환자 증가와 인구고령화에 따른 새로운 의료 수요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60.5%가 3개 이상의 복합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병원을 퇴원한 환자가 적절한 외래 관리를 받도록 연계되지 못해 재입원의 위험을 낮추지 못하고,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정기 검사와 투약 관리를 받을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도 요인이다.

우리나라 인구당 외래 의사 방문 횟수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것을 감안할 때, 1차 접촉에 있어서 의원 이용이 감소했다기보다는, 의사와 환자의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의원이 경쟁 우위에 있지 못한 결과라는 게 강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환자 중심의 의료연계 추진, 의료 질 차이 좁혀야
환자쏠림 완화를 위해서는 어떠한 대안이 필요할까. 강 연구위원은 환자가 체감할 수 있는 의료 질 향상과 의료기관 간 의료 질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환자중심 의료연계’를 들 수 있다. 환자중심 의료연계는 환자 중심에서 좋은 질의 의료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제공되며, 임상적 결정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환자와 공급자에게 이용 가능하도록 하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강 연구위원은 “환자 중심으로 의료공급자간 진료정보가 공유되고 서비스가 연계되면, 외래 관리의 일관성과 질이 향상돼 불필요하거나 계획되지 않은 고비용 입원을 예방할 수 있다”며 “일차의료 기능의 향상은 자연스럽게 단계적 진료환경을 조성해 의료 질과 효율성에 대한 시스템 성과를 모두 향상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와 공급자 모두 원하는 때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 가능 ▲의원의 외래서비스 질 향상 ▲지불제도 개편 ▲공급자 간 협력을 방해하는 행정적 장애 제거 등이 전제돼야 한다.

일례로, 미국 의료시스템의 질을 측정하는 미국의료질보고서(NHQR)는 매년 미국의료시스템의 의료연계 기능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환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1차의료 의사가 다른 의료인에게 받은 진료내역을 확인하거나 정보를 공유하고자 노력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다.

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의료패널 등에서 조사항목을 추가해 지속적으로 정책성과를 모니터링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기사]

·[본들] 네트워크 병원 흔든 Y의원 내사…검찰에 몰리는 '시선' [2014/06/09] 
·"올 7월, 주목할 만한 임상결과 발표할 것" [2014/06/08] 
·[포커스]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환자들, 그 이유는… [2014/06/09] 
·“원격의료 시범사업, 이대로 해도 되는 건가요?” [2014/06/09] 
·백혈병약 ‘글리벡 복제약’ 저가 경쟁 본격화 [2014/06/09] 

오경아 기자 okafm@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