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험란한 탐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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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극권을 탐험한 최초의 문명인은「그리스」의「피데아스」로 기록돼 있다.

<첫탐험은 bc 4세기>
유명한 수학자이며 천문가였던 그가 탐험 항해를 시작한 것은 기원전 325년.「제우스」의 아들「헤라클레스」가 설치했다는「지브롤터」의 해안 감시소를 지나 태양과 별만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북대서양 속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북쪽은 악마가 우글거리고 1년 내내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유령의 바다」라고 믿고있던 당시로는 일대 모험이었다.
그의 탐험은 당시 화폐처럼 중히 쓰이던 주석을 얻기 위해서였다. 주석은 시장에 나돌기는 했지만「골」인들의 손을 거쳐오기 때문에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피데아스」는 부유층 상인들의 후원으로 2층으로 된 목선을 마련, 주석의 보고라는 그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섰다.
어려운 항해 끝에 지금의 영국땅을 발견한 그는 상륙하여 그곳 주민들로부터 먼 북쪽에 「툴레」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밤낮이 수개월씩 계속되고 얼어붙은 바다도 보인다는 말을 듣고 계속 북항했다.
「룰레」는「아이슬란드」의 옛이름. 지금은「그린란드」서북쪽의 마을 이름으로 되어있다.
「피데아스」는 6일간의 항해 끝에 멀리서 육지를 목격하고 되돌아갔다. 이 육지가 바로 「툴레」로 불리던「아이슬란드」땅.

<기러기떼 쫓다 섬 발견>
다음번 북극탐험자는 중세「아일랜드」의 기독교 수도자들. 수도원의 엄격한 집단생활에 못견뎌 탈출한 일단의 승려들이 갑판이 없고 밑이 둥근 목선을 타고「스코틀랜드」서쪽의 작은 섬으로 피난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해마다 초봄이면 기러기떼가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거기엔 필시 사람이 살 수 있는 육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AD770년 기러기떼의 뒤를 쫓아 가다가 무인도「아이슬란드」를 발견, 거기에 정착했다.
「사가」(중세사화)에는 AD807년 그곳에 도착한「바이킹」들이 승려와 교회와 성경을 보았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북극활동은 항해에 능하고 모험을 좋아하던「스칸디나비아」의「바이킹」들에 의해 비로소 시작됐다.「노르만」의 한 족장「카루다」는 무리를 이끌고「노르웨이」에서 서쪽으로 항해,「아이슬란드」에 정착했다.
그후「스칸디나비아」인들이 대거 「아이슬란드」로 이주했다.
이민선들은 심한 폭풍에 휘말려 많이 희생되기도 했는데 10세기 초「군비외른」이 인솔하던 이민단의 배는 20일간의 표류 끝에「그린란드」의 동해안에까지 이르렀다.

<한때「신세계」로 각광>
공포의 바다 저쪽에 또 다른 육지가 있다는「군비외른」의 항해보고는「스태미너」가 왕성한「바이킹」들을 크게 자극했다.
마침 살인죄로 국외 추방령을 받고 있던「아이슬란드」의 한 족장「에리크」는 이말에 따라 AD983년 배20척에 일가권속들을 싣고 서북쪽으로 항해,「그린란드」의 서남해안에 상륙했다. 거기엔 넓은 목초지와 경작에 알맞는 토지도 있었다.「바이킹」들은 밖으로 뻗어나갈 신세계를 얻은 것이다.
이들의 정착소식이「유럽」에 전해지자「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등지에서 이주자가 속출,「그린란드」에 식민지가 개척됐다.
정착민은 여름이면 농사를 짓고 겨울엔 사냥과 고기잡이를 해가면서 살았다. 원주민「에스키모」등과도 선린관계를 유지,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다.「에스키모」들은 백곰과 해표의 모피를 가져왔고 정착민들은 본국에서 보내온 곡물과 철제 도구를 주었다.

<동토로 변해버린 옥토>
「노르웨이」는 12세기초부터는 신부를 보내 신앙생활을 지도했고 매년 두차례씩 무역선을 보내 필수품도 공급했다. 정착민들은 1261년 투표를 통해 정식으로「노르웨이」왕실의 식민지로 편입됐다.
그러나 그후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그린란드」에서는 기상변동이 일어나 따뜻했던 「그린란드」의 기후가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만큼 추워졌고「유럽」에서는「한자」동맹의 제해권에 눌려「노르웨이」는 무역선 파견을 중단하게 됐다.
본국과의 연결이 끊긴채 근친결혼을 해가며 어렵게 살아가던「바이킹」들은 15세기에 이르러 멸망했다. 후에 이들의 행방을 추적한 서구의 고고학자들은 얼음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미이라」들을 발견했는데 모두가 굶어서 피골이 상접해 있었거나 유혈의 상처를 입은 시체들이었다.
학자들은 정착민과「에스키모」가 경제문제로 충돌, 생존을 건 전쟁이 벌어져「바이킹」측이 전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종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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