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시론 - 대통령 집무실 개조해야 ② 지금 청와대 구조는 석기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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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

‘대각성(great awakening)’의 시대가 열렸다. 안타까운 세월호 비극은 인간성 위기의 시대에 대한 사회의 자각과 반격 운동을 의미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급속도로 성공시킨 대한민국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지금에 와서야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아마 이 대각성의 새로운 시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잘 보이지 않고 주변부로 밀려난 가치일 것이다. 생명·감응·균형·협력·회복 같은 단어들 말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어느 기자의 표현을 빌려 새로운 대각성의 시대를 이렇게 이해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리더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

 대각성의 시대라 그런지 최근 정부 내에서 국가 대개조라는 어마어마한 단어가 빈번히 등장한다. 그런데 기이한 점은 거창한 물리적 시스템의 개편이나 인사조치 얘기만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물결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변동에 대한 근본적 탐구는 빠져 있다. 그 결과 국가 대개조는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대통령제 사회에서 국가 리모델링의 핵심인 청와대의 철학과 구조에는 시야가 미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제의 원형을 만들어낸 미국은 기존 유럽 봉건제와의 혁명적 단절을 통한 새 국가 건립을 위해 보다 민주적인 백악관의 가치와 공간 구조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풀뿌리 시민 공동체를 중시하는 시민 공화주의 철학을 가지고 왕정의 넓고 위압적인 공간 구조 대신에 상대적으로 작고 민주적인 백악관을 만들었다.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주요 참모들의 방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 소통에 유리하다.

 이와 같은 구조와 함께 여론조사 등 공감 정치를 위한 갖가지 기법을 동원하지만 그래도 백악관의 영원한 과제는 현장 민심과의 장벽이다. 미국 언론인 케네스 월시의 신간 『백악관의 죄수들-미국 대통령들의 고립과 리더십의 위기』에 따르면 민주당의 린든 존슨·지미 카터,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조지 W 부시는 이 난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특히 매우 내성적인 닉슨은 ‘외롭고 고독한 사자’라고 불렸다. 그는 홀로 식사하고 실세 비서실장인 H.R. 핼드먼을 통한 간접적인 민심 파악에 매달리다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국제관계의 탁월한 비전을 가졌던 닉슨이기에 더욱 안타까운 실패가 아닐 수 없다. 군주적 위엄을 설계한 청와대에 비하면 백악관은 훨씬 사람 사는 공간답다. 그런 백악관조차 그 공간의 저주를 돌파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청와대 개조는 그동안 간과돼 왔다. 이제는 세 가지의 본격적 논쟁이 필요하다. 첫째는 정부 내 소통이다. 대통령은 외롭고 고독한 사자로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참모진이나 내각은 물론이고 나아가 의회와의 긴밀하고 치열한 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속에서 살아야 한다. 둘째는 시민사회와의 감응성이다. 청와대는 협소한 여론조사 보고서의 전달 창구에 그쳐선 안 된다. 청와대라는 공간을 통해 대통령과 참모진이 사회의 지적인 에너지와 감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열린 청와대다. 미국의 백악관은 사랑방 같은 기자실이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 사랑방을 애용한다. 최근에는 불쑥 기자실에 들러 물러나고 새로 들어오는 대변인들을 자상하게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속도감이다. 21세기의 현기증 나는 시간의 파괴와 불확실한 재난의 시대 속에서 신속한 보고와 판단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공간이 설계되어야 한다. 공간을 가까이 붙이는 것은 물론 정보기술(IT) 시스템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참모들이 차를 타고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구조는 석기시대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만 보아도 학생들의 카톡 대화와 동영상이 사태의 방향을 결정 짓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시대에 참모들과 500m 떨어진 곳에서 대통령 혼자 구중궁궐에 앉아 있는 건 진화의 반대편으로 내달리는 것과 같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1994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벤저민 바버 교수 등 당대의 석학들과 함께 융·복합 세미나를 연 적이 있다.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 잡으려는 대통령의 몸부림이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청남대 별장으로 생태 철학, 건축신경학, 임상 심리학, NGO학 등 다양한 석학을 초청하는 일이 가능할까. 아니 별장 토론회보다 먼저 사무실 간담회부터 필요하다. 자신의 방을 개방하고, 참모들에게 가까이 옮겨가고, 나아가서는 공동 회합의 공간을 아우르면 그것이 변화의 세미나요 민심 공부다.

 이런 진화를 위해 대통령은 우선 석기시대 집무실부터 개조해야 한다. 어려움은 없다. 대통령이 결정하면 된다. 본인이 익숙한 고독 속에 계속 머무르면 정권은 민심과 동떨어질 수 있다. 이는 대통령 자신은 물론 국가에 불행한 일이다.

공간이 의식을 규정한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치면서 대통령 자신의 공간은 가장 비정상적인 상태로 놓아두면 자신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외롭고 고독한 암사자가 되어선 안 된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