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새 아이디어 없다 다만 조합만 새롭게 할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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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각에 잠긴 아르키메데스’. 도메니코 페티(1588~1623)의 1620년 작품. [사진 위키피디아]

표절하기를 무척이나 사랑해 표절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석·박사 학위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뭘까. 핵심 원인은 아이디어가 없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없는 것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제임스 웹 영(1886~1973)이 지은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A Technique for Producing Ideas)』(1939)은 누구나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년께~212년께)처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외마디 중 하나인 ‘유레카(알아냈다)!’를 외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고전 중의 고전인 이 책의 타깃 독자는 광고 카피라이터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도 통용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수많은 애독자가 증언한다.

 우선 제임스 웹 영이 주장하는 아이디어를 둘러싼 대전제를 살펴보자. 첫째로 회사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다. 둘째로 아이디어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정된 순서와 규칙에 따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셋째로 아이디어 생산 능력은 훈련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의 한글판(왼쪽)과 영문판 표지.

 이 대전제에 동의한다면 계속 읽어나가시라. 그렇다면 ‘아이디어 생산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원칙은 ‘아이디어는 기존 아이디어의 새로운 조합에 불과하다(An idea is nothing more nor less than a new combination of old elements)’는 것이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 리 없다’(전도서 1:9)고 했다. 진짜 새로운 것은 희귀하다. 스마트폰만 해도 전화와 컴퓨터와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를 합쳐 놓은 것이다.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 비밀·비결은 ‘조합’에 있다.

 둘째 원칙은 ‘아이디어를 새롭게 조합하는 능력은 기존의 변수와 변수, 팩트와 팩트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The capacity to bring old elements into new combinations, depends largely on the ability to see relationships)’는 것이다. 예컨대 영국 정치학자 스튜어트 엘던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타난 영토의 개념을 연구한다. 국제정치학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영토와 셰익스피어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관계가 있다.

 자 이제 ‘아이디어 생산 방법의 5단계’를 말할 차례다. 반드시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를 순서대로 거쳐야 한다.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 많은 사람이 1~3단계를 거치지 않고 4, 5단계에서 헤맨다고 영은 지적한다.

 예비 단계라 할 수 있는 게 있다. 단어를 정복하는 것이다. 단어는 정지해 있는 아이디어다. 단어를 정복하면 단어 속의 아이디어가 되살아 나온다. 사전과 친하게 지내라.

 1단계는 정보·지식·팩트·데이터 같은 원재료(raw materials)를 수집하는 단계다. 식사에 비유하자면 먹을 음식을 모으는 단계다.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된 원료뿐 아니라 일반적인 지식, 자신이 하는 일과 동떨어진 원료를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조적인 사람은 고대 이집트 장례 절차에서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2단계는 원재료를 종합하는 단계다. 이제 음식을 씹을 때다. 수집한 원재료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종합해 원재료와 원재료 사이에서 관계를 찾는 단계인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시험적인(tentative)·부분적인(partial)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아직은 진짜 아이디어(real idea)가 아니다.

 2단계에서 퍼즐조각 맞추기를 하는 것처럼 관계를 찾다 보면 머리가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피곤하고 지치게 되면 2단계가 끝난 것이다.

 3단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단계다. 음식을 소화하는 단계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를 잊어버려라. 최대한 마음에서 문제를 비워라.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작업은 무의식이 수행하게 내버려둔다. 나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시를 읽으면 된다.

 4단계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문제에 대해 자나 깨나 항상 생각한다. 뉴턴에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묻자 “그것에 대해 항상 생각함으로써(By constantly thinking about it)”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자나 깨나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는 ‘유레카’의 순간이 있다. 샤워할 때, 산책할 때 등 도둑처럼 아이디어가 들이닥친다.

 5단계는 아이디어를 실용화하는 단계다.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에 적용시키는 단계다. 이제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전문가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오히려 이 단계가 가장 괴롭다.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김환영 기자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남미학 석사학위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심의실 위원, 단국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하루 10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아포리즘 행복 수업』등이 있다.

James Webb Young
제임스 웹 영은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미국 광고계의 전설이다. 미 광고협의회(Advertising Council) 초대 회장을 지냈다. 시카고 비즈니스 스쿨 교수(1931~39)로서 비즈니스 역사와 광고를 가르쳤다. 다른 저서로는 『어느 광고인의 일기인이 되는 법』이 있다.

[좋은 삶, 좋은 책] (15) 제임스 웹 영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
"단어는 정지해 있는 아이디어
사전과 친할수록
아이디어가 되살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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