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택 기자의 '불효일기' <25화> 암투병 수발, 어머니의 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요새는 아버지 머리에 다시 머리카락이 난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아버지가 그간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지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래도 머리카락이 다시 좀 나는 듯 하니 마음이 놓인다는 마음. 다른 하나는 혹시 아버지가 너무 쇠약해져 항암제를 약하게 쓰기 때문 아닌가. 정확한 이유는 주치의 교수의 머릿속에 있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아버지는 최근 1주일 동안은 별다른 통증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통증으로 신음하는 암환자 부모가 있는 자녀들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통증 없이 단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사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극도의 아픔을 겪으면서 사는 것은 환자나 가족이나 원하지 않는 결과다.

아버지에 대한 약간은 안도의 한숨이 나올 무렵, 어머니의 왼쪽 새끼손가락에 혹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는 약간 물혹 비슷하게 됐었는데, 커져서 새끼손가락 마디가 부어버린 것 같이 됐다.

얼른 난리를 쳐서 다음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물론 전문가인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병이다. 그냥 좀 째서 긁어내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꾸준히 먹고 주사 맞으면 금세 나을 일이다. 하지만 '까막눈'인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나 아버지를 위해 각종 집안일과 간병 등 수발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손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나 내 아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린다.

수술 역시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에 수도관이 노후화돼 터졌다. 밤 11시에 내가 '출동'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옆집 아저씨가 수도 밸브를 잠갔고, 어머니는 넘친 물을 퍼냈다고 했다. 20회 이상 물을 퍼내다보니 손이 더 아프다고 했다. 딱히 해 드릴 수 있는 일도 없고, 어머니 이야기나 좀 듣다가 돌아왔다. 결국 수술은 이틀 미뤄져 진행됐다.

어머니는 손이 아프고, 또 수술을 받은 와중에도 아버지의 점심 식사를 챙겨준다. 집 인근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이 고되고 힘들지만, 아버지에게 따스한 밥을 챙겨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침에 나가 일을 시작하는 어머니는 점심시간에 잠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밥을 차려준다. 때로는 잔치국수, 열무비빔밥, 청국장 등 입맛을 돋우기 위한 새로운 메뉴를 꾸준히 선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어머니께 더 편한 일자리 기회가 있었는데, 포기하게 된 것도 아버지 수발을 들기 위해서다. 어머니는 "일이 좀 힘들더라도, 네 아버지 아플 때 가서 챙기고, 배고프다고 할 때 밥을 차려 줄 수 있는 직장이 어디 또 있는 줄 아느냐"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그렇다.

어머니께는 죄송한 마음뿐이다. 어찌 보면 자식인 내가 챙겨야 할 일인데, 아들은 일하고 또 빚 갚는 것 외에 추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마음 같아서는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고 일을 하지 않으시도록 하고 싶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직 3년 정도는 나는 빚 갚는 데만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 비록 내가 사업실패를 하거나 부적절한 처신으로 빚을 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 대신 내 이름으로 돈을 빌려 사업자금을 대드린 대출이지만 말이다. 빚을 갚지 않으면 나 역시 살아날 길이 없고, 내 아내에게도 면목이 없고, 만약 계속 빚이 남거나 혹시 늘어난다면 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어머니의 건강은 아버지의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나야 이제 암도 걸렸고, 안 아프다가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네 엄마는 어찌 될지 모른다. 항상 네 엄마 건강을 잘 챙겨라. 예전에 내 숙부님이 아프셨을 때도, 정작 간호하다가 숙모님이 먼저 돌아가셨다. 네 엄마가 혹시라도 갑자기 아프지 않도록 항상 잘 챙겨줘야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괜찮다면서 치료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전에는 이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병원을 안 가고 진통제만 먹고 참았다. 결국 "치과를 가지 않으면 집에 찾아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나서야 어머니는 치과에 가셨다. 너무 늦게 왔다면서 2달 동안 치료를 했고, 이를 4개를 뽑아야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치료비가 있다는 내 이야기를 10번 정도 확답을 듣고 나서야 치료를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건강에 자신감이 있다. 내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어머니도 건강검진을 했다. 정밀검사까지는 아니었는데, 혹시나 암이라도 발견될까 싶어 어머니는 2주 동안 금주와 운동을 병행하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별 것 없다"는 말에 그날 바로 회에 소주를 곁들여 가족 회식을 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금도 많은 어머니들은 남편 챙기고, 자녀 챙기느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약간은 무덤덤하게 계신다. 내 어머니 역시 그 중 한 분일 것이다. 실제로 대학병원에 가면 남편의 항암치료 또는 암수술을 간병하기 위해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부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여성 환자들의 경우에는 남편들이 옆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부인들보다는 적을 것이다.

어머니의 손을 떠올리다가, 문득 가수 김희갑 선생의 <불효자를 웁니다> 가사를 찾아봤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비극에 우는 자식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후략)

어째 나이 60에 계속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니, 아들이 못나서 고생을 더 하시는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든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열심히 일해서 나은 환경을 만드는 것 외에는 어머니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게 이 불효자의 현 주소다.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어머니께도 더 잘해야 하겠다. 지방선거 개표방송이나 보면서 저녁식사나 할 참이다.

* ps.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건강을 걱정하면, 주로 "야, 엄마 안 죽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현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