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파트 후분양제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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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건설교통부가 대통령 업무 보고 후 아파트 후분양 제도를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주택의 품질 수준을 높이고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후분양제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의 후속 조치인 셈이다.

후분양 제도가 검토되는 배경은 선분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기존의 주택시장 구조가 부동산 투기를 야기하고 주택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행 주택공급 제도상으로도 신규 주택분양은 후분양이 원칙이며, 제한된 조건에서 선분양이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주택을 서둘러 구입하려는 소비자와 소비자의 선납금으로 주택을 건설하는 공급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분양시장은 사실상 선분양이 주도해 왔다. 후분양은 곧 미분양으로 치부되는 실정이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주택시장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하나가 주택 건설주체가 택지를 확보한 개발업자인 시행사와 주택을 건설하는 시공사로 나눠진 것이다.

건설 주체의 이원화로 각자가 극대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분양가가 오르고, 주택품질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분양의 제도화가 이러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되는 것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후분양 제도화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분양 방식에서는 소비자들은 주택건설 업체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겨우 마련한 주택의 품질이 부실 공사로 인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외국의 후분양 사례를 보더라도 토목 부분이나 구조 부분과 같이 감추어진 부분의 문제와 이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후분양으로 온전히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선분양에서 후분양으로의 전환에 따라 주택시장이 감당해야 할 대가도 만만한 것이 아니다. 주택 건설과정에서 소비자의 선납으로 충당하던 부분만큼을 금융으로 조달해야 한다.

그 금액은 추정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연간 50만세대의 주택건설 수준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업체의 자금 조달 형태를 감안하면 총 68조4천억원, 그리고 선분양 때 주택건설 업체의 부도가 발생하면 소비자의 피해를 보증하던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 실적을 기준으로 할 경우엔 82조3천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금융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주택건설 업체의 신용 부족으로 인해 마련된 금융이 제대로 건설자금으로 활용되기 어렵다는 또 다른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주택건설 업체의 부족한 신용을 공공의 보증으로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대출보증이라는 명칭으로 이 제도가 사용됐으나 결과는 실패였고, 그 대가로 주택사업공제조합의 경영이 크게 악화됐다.

결국 자금 여력이 있고, 신용이 있는 몇몇 대형 주택건설업체만이 주택을 건설,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주택공급 물량의 감소가 예상되는 한편 주택시장에서 독과점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예상될 수 있다.

이제까지 주택시장은 국민주택기금을 제외하곤 주택 공급자 금융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택시장의 경기가 침체되거나 주택가격이 하락하더라도 금융권에 대한 충격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즉 버블의 무풍지대였던 셈이다. 그러나 후분양 제도로 인해 금융이 주택시장에서 공급자 금융을 담당할 경우 주택시장의 경기악화는 금융권에 악영향을 주게 되고, 최악의 경우 주택시장에서의 버블 붕괴라는 문제가 생기면 금융권에 커다란 손실을 줄 연결고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 소비자들의 우려와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하는 것은 주택건설업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주택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 대안은 후분양제가 아니고 주택의 품질을 보험으로 보장하는 주택품질보증제도(home warranty)일 것이다.

향후 후분양제의 논의 과정에서 이 제도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 접근에서 탈피해 시장의 구조와 소비자의 진정한 요구를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포괄적인 정책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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